마윈 회장 퇴임 임박한 알리바바, 후계 체제 구축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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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출신은 안된다'던 마윈, '일벌레' 장융에 반해 후계 낙점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그룹 마윈(馬雲) 회장의 퇴임이 내달 10일로 다가왔다.마윈은 1년 전부터 알리바바의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사내에서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추진해 왔다.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 장융(張勇)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취임이 임박했음을 안팎에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창업 20년만에 누만금의 부를 일군 알리바바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7일 전했다.알리바바는 1999년 영어교사 출신의 마 회장이 동료 17명과 함께 창업했다.
창업 멤버들은 '18 나한(羅漢)"으로 불린다.
18나한은 불교에서 최고 경지의 깨달음을 얻은 고승을 나한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마윈이 1년전 은퇴의사를 밝히자 창업 멤버 일부가 "마윈의 후계자는 '18나한'중에서 선발해야 한다"며 장융 후계 지명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마윈은 "장융 이외의 후계자는 생각할 수 없다"고 일축하고 이양작업을 추진해 왔다.
그는 그룹내 5개 계열사의 주요 직위에서 차례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장융에게 물려줬다.
알리바바 주식매각도 추진해 작년 6월 지분을 7%에서 6.4%로 낮춘 데 이어 최근에는 6.2%까지 축소했다.마윈이 반한 장융은 상하이(上海)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 회계사무소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상하이 사무소에 입사했다.
이후 중국 유수의 게임회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다 소문을 들은 마윈이 직접 담판에 나서 2007년 스카우트했다.
"회계업계 출신답게 항상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다"(사내 관계자)는 게 장융에 대한 인물평이다.
'일귀신'으로도 불린다.
가족을 상하이에 둔 채 단신으로 항저우(杭州)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항저우셰라톤'호텔에 투숙,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필요하면 심야에도 회의를 소집한다.
알리바바는 거대 기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거의 모든 사업 부문의 보고를 직접 받으며 "자신이 지시를 내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사내 관계자)이다.
마윈은 처음에는 그런 장융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CFO 스타일인 사람은 생각이 보수적이어서 CEO가 될 수 없다"는 게 마윈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장융은 알리바바에 입사한 후부터 자신에게 붙여진 'CFO 타입'이라는 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지금은 중국 최대의 세일시즌으로 굳어져 알리바바의 대명사가 된 '독신의 날(11월 11일)'을 고안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것도 장융이다.
주력 통신판매 사이트인 '다오바오(淘宝網)'에 가짜 상품이 나돌아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알리바바가 고전하던 2014년 고급상품을 취급하는 별도의 통신판매 사이트 'T몰(天猫)'을 성장궤도에 올려 실적을 회복시킨 것도 장융이었다.
주력인 인터넷 통신판매 주문이 주로 PC를 통해 이뤄지던 2013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할 것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경영자원을 스마트폰 앱개발에 집중해 인터넷 판매시장에서 알리바바를 부동의 왕자로 밀어 올린 것도 그였다.
이런 일련의 업적이 마윈 회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장융은 2015년 마 회장에 이어 CEO에 취임했다.
그는 즉시 알리바바의 다음 성장 가도를 개척해야 한다며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지난 몇년간 M&A에 쏟아부은 자금만 10조원이 훨씬 넘는다.
이런 대담한 경영 솜씨가 마윈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마침내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다.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장융은 코앞에 닥친 후계자 취임을 앞두고도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그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인 '경제발전집행위원회'다.
이 조직이 앞으로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다.
주요 사업 부문의 최고책임자 17명을 산하에 거느리되 모두 장융 자신에게 직접 보고를 의무화한 새로운 조직이다.
새 조직의 주요 간부 6명 중 창업 멤버인 18나한 출신은 1명뿐이다.
물론 마윈 회장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장융이 이끄는 새 체제의 실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카리스마 경영자인 마윈 회장은 타협을 모르는 경영으로 알리바바를 당대에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다만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이 과정에서 좌절 직전 상태에 몰리기도 했다.
항상 정부를 의식하고 상대해야 하는 중국 특유의 기업환경 때문이다.
장융도 이런 사정을 명심하고 있다.
그는 마윈이 은퇴를 선언한 직후부터 공식 석상에서 "우리는 정부로부터 큰 지원을 받고 있다"고 끊임없이 강조, 정부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올 여름 드러난 홍콩 증시상장계획도 그중 하나다.
상장이 이뤄지면 뉴욕시장과 중복 상장이 되지만 미중 마찰이 격화하는 상태에서 전부터 유력기업의 중국 본토 또는 홍콩증시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중국 정부를 기쁘게 하는 계획이어서다.
그러나 미중마찰과 송환법을 둘러싼 홍콩의 대규모 시위사태로 상장은 연기됐다.이런 안팎의 상황은 장융에게도 쉽지 않은 환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연합뉴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그룹 마윈(馬雲) 회장의 퇴임이 내달 10일로 다가왔다.마윈은 1년 전부터 알리바바의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사내에서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추진해 왔다.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 장융(張勇)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취임이 임박했음을 안팎에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창업 20년만에 누만금의 부를 일군 알리바바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7일 전했다.알리바바는 1999년 영어교사 출신의 마 회장이 동료 17명과 함께 창업했다.
창업 멤버들은 '18 나한(羅漢)"으로 불린다.
18나한은 불교에서 최고 경지의 깨달음을 얻은 고승을 나한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마윈이 1년전 은퇴의사를 밝히자 창업 멤버 일부가 "마윈의 후계자는 '18나한'중에서 선발해야 한다"며 장융 후계 지명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마윈은 "장융 이외의 후계자는 생각할 수 없다"고 일축하고 이양작업을 추진해 왔다.
그는 그룹내 5개 계열사의 주요 직위에서 차례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장융에게 물려줬다.
알리바바 주식매각도 추진해 작년 6월 지분을 7%에서 6.4%로 낮춘 데 이어 최근에는 6.2%까지 축소했다.마윈이 반한 장융은 상하이(上海)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 회계사무소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상하이 사무소에 입사했다.
이후 중국 유수의 게임회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다 소문을 들은 마윈이 직접 담판에 나서 2007년 스카우트했다.
"회계업계 출신답게 항상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다"(사내 관계자)는 게 장융에 대한 인물평이다.
'일귀신'으로도 불린다.
가족을 상하이에 둔 채 단신으로 항저우(杭州)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항저우셰라톤'호텔에 투숙,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필요하면 심야에도 회의를 소집한다.
알리바바는 거대 기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거의 모든 사업 부문의 보고를 직접 받으며 "자신이 지시를 내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사내 관계자)이다.
마윈은 처음에는 그런 장융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CFO 스타일인 사람은 생각이 보수적이어서 CEO가 될 수 없다"는 게 마윈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장융은 알리바바에 입사한 후부터 자신에게 붙여진 'CFO 타입'이라는 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지금은 중국 최대의 세일시즌으로 굳어져 알리바바의 대명사가 된 '독신의 날(11월 11일)'을 고안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것도 장융이다.
주력 통신판매 사이트인 '다오바오(淘宝網)'에 가짜 상품이 나돌아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알리바바가 고전하던 2014년 고급상품을 취급하는 별도의 통신판매 사이트 'T몰(天猫)'을 성장궤도에 올려 실적을 회복시킨 것도 장융이었다.
주력인 인터넷 통신판매 주문이 주로 PC를 통해 이뤄지던 2013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할 것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경영자원을 스마트폰 앱개발에 집중해 인터넷 판매시장에서 알리바바를 부동의 왕자로 밀어 올린 것도 그였다.
이런 일련의 업적이 마윈 회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장융은 2015년 마 회장에 이어 CEO에 취임했다.
그는 즉시 알리바바의 다음 성장 가도를 개척해야 한다며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지난 몇년간 M&A에 쏟아부은 자금만 10조원이 훨씬 넘는다.
이런 대담한 경영 솜씨가 마윈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마침내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다.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장융은 코앞에 닥친 후계자 취임을 앞두고도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그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인 '경제발전집행위원회'다.
이 조직이 앞으로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다.
주요 사업 부문의 최고책임자 17명을 산하에 거느리되 모두 장융 자신에게 직접 보고를 의무화한 새로운 조직이다.
새 조직의 주요 간부 6명 중 창업 멤버인 18나한 출신은 1명뿐이다.
물론 마윈 회장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장융이 이끄는 새 체제의 실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카리스마 경영자인 마윈 회장은 타협을 모르는 경영으로 알리바바를 당대에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다만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이 과정에서 좌절 직전 상태에 몰리기도 했다.
항상 정부를 의식하고 상대해야 하는 중국 특유의 기업환경 때문이다.
장융도 이런 사정을 명심하고 있다.
그는 마윈이 은퇴를 선언한 직후부터 공식 석상에서 "우리는 정부로부터 큰 지원을 받고 있다"고 끊임없이 강조, 정부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올 여름 드러난 홍콩 증시상장계획도 그중 하나다.
상장이 이뤄지면 뉴욕시장과 중복 상장이 되지만 미중 마찰이 격화하는 상태에서 전부터 유력기업의 중국 본토 또는 홍콩증시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중국 정부를 기쁘게 하는 계획이어서다.
그러나 미중마찰과 송환법을 둘러싼 홍콩의 대규모 시위사태로 상장은 연기됐다.이런 안팎의 상황은 장융에게도 쉽지 않은 환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