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박영선 장관 앞에서 목소리 작아지는 관료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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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요즘…지난 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회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각 부처 장·차관 2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이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였다. 언론에 발표할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다.
"어려운 용어 쓰지마라"
"스마트공장은 중기부 소관"
성윤모 장관에 언성 높여
한·일 무역분쟁의 주무부처 수장인 성 장관이 “1년 내 20개, 5년 내 80개 전략 품목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설명하자 박 장관이 갑자기 “대·중소기업 상생 품목 30여 개 육성 방안을 따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성 장관이 반대했지만 박 장관은 굽히지 않았다. 결국 ‘대·중소 상생품목 지원안’을 별도로 발표했다.산업부와 중기부가 서로에 각을 세우고 있다. 산업부 산하(외청)였던 ‘중소기업청’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독립한 영향도 있지만 여권 실세인 박 장관이 지난 4월 취임한 뒤 중기부 힘이 부쩍 커진 게 근본 원인이란 전언이다.
소재·부품·장비 회의 땐 발표 자료의 표현을 놓고서도 두 장관이 세게 부딪쳤다고 한다. 성 장관이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읽자 박 장관이 “그렇게 어려운 용어를 쓰면 어떻게 하느냐”며 끼어들었다. 방송기자 출신인 박 장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라고 쓰라”고 훈수를 뒀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현역 4선 의원인 박 장관이 국정감사 때처럼 성 장관에게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더라”고 귀띔했다. 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홍 부총리는 “다 내 부덕의 소치”라며 서둘러 마무리지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또 다른 자리에선 박 장관이 “스마트공장 프로젝트의 주무부처는 중기부인데 왜 산업부가 나서느냐”고 성 장관에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 스마트공장(생산의 전 과정을 무선통신으로 연결한 공장) 업무가 작년 중기부로 이관됐으나 스마트 산업단지는 산업부가 관할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기부가 박 장관을 믿고 워낙 강경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우리 쪽에선 ‘스마트’란 단어를 쓰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국무조정실도 난감해하는 건 마찬가지다.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보니 중기부가 끼어있는 사안에 대해선 아예 정책 안건으로 올리는 걸 꺼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