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가습기살균제도 호흡기에 악영향 가능성"…이틀째 청문회(종합2보)

"'119 세균제거제' 원료 염화벤잘코늄 지속 흡입땐 비강·후두·폐에 영향"
옥시, 가습기 참사 책임 정부에 떠넘겨…피해자들 강력 항의
"사용자 400만명 중 피해구제 신청자 6천500명뿐…정부, 적극적으로 나서야"
LG생활건강은 그동안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이 제품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이틀째 1부 '기업분야' 세션에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와 LG생활건강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옥시 본사의 참사 연루 여부와 LG생활건강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추궁했다.

이날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서동석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은 LG생활건강이 판매한 '119 가습기 세균제거제' 원료인 염화벤잘코늄(BKC)에 대해 "환경부 요청에 따라 지난 4월까지 흡입독성 연구를 했다"며 연구 결과 90일간 반복해서 흡입하면 비강과 후두, 폐 등 호흡기 계통에 악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증인으로 나온 이치우 전 LG생활건강 생활용품 사업부 개발팀 직원은 "제품에 포함된 함유량을 조건으로 실험해야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다"며 해당 실험으로는 제품의 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LG생활건강은 해당 제품의 BKC 함유량은 0.045%로 극소량에 불과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제품으로 흡입독성 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확인했느냐는 특조위의 질문에 박헌영 LG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흡입독성 실험은 하지 않았고 문헌에 근거한 간접 기법을 동원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LG생활건강 가습기살균제가 100만개 이상 팔렸는데, 이 제품을 써서 피해를 본 피해자를 찾는 일은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119 가습기 세균제거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현재 2명뿐이며 이들도 사실상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 하는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분류됐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특조위에서 부산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LG 가습기살균제를 쓴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20명의 사용자가 나왔고 이 중 사망 사례도 있었다"며 "조사하고 찾으면 이렇게 피해자가 나온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또 옥시를 상대로 영국 본사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연루됐는지와 참사 이후 대응 과정에서 문제점 등을 캐물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옥시 본사는 미국 연구소에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받았고,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터지자 글로벌 세이프팀 사람들과 모여 논의했다"며 "그러나 2016년 국회 국정조사 때나 오늘 청문회에도 본사 책임자나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외국인 대표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필규 특조위 비상임위원도 "잘못이 없으면 당당히 한국에 와서 조사받고 무혐의 처분받으면 된다"며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하지만 본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책임을 묻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본사의 결정에 저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며 "오늘 청문회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또 SK와 애경이 협의체를 구성해 '말 맞추기'를 했으며 SK와 애경이 옥시가 과도하게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김앤장을 통해 항의했다는 전날 청문회 내용에 대해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1994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개발·판매했을 때나 1996년 옥시가 유사 제품을 내놨을 때 정부 기관에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을 정부의 관리 부실로 돌리는 발언을 했다.

이에 청문회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1부 기업분야 세션에 이어 진행된 2부 정부분야 세션에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뒤에도 정부가 피해자 찾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부위원장은 "2017년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최종보고서에는 가급기살균제 사용자가 350만∼400만명, 건강피해 경험자가 49만∼56만명, 병원 진료 경험자가 35만∼40만명에 이른다고 나온다"며 "그러나 정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신청한 사람은 6천509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은 "실제 피해자 대비 피해구제 신청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신청자도 모두 자발적으로 신고한 것"이라며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명래 장관은 "청문회를 통해 피해자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보건복지부가 매년 실시하는 지역사회 건강조사와 의료보험공단 자료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특히 군에서 가습기살균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는데 피해자 찾기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가 특조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총 55개 부대에서 2천416개의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천612개가 의무사령부 소속 15개 부대에서 사용됐다.

최 부위원장은 "특조위가 지난 19일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는 군에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2011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문제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3부 '피해지원' 분야에서는 참사 초기 역학조사나 특별법 제정 등에서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을 따졌다.

황전원 특조위 상임위원은 "가습기살균제의 문제점이 알려지기 전인 2011년 2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시민이 식약청에 해당 제품의 원료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의 안전성을 물었다"며 "식약청은 공산품이니 지식경제부에 문의하라고 넘겼고 이후 이 질문은 지경부→국민권익위→복지부→권익위→환경부→권익위→지경부를 거쳐 1개월 만에 다시 식약청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정부의 이런 핑퐁 게임을 보면 참사 초기에 당시 정부가 사건 해결의 첫 단추를 얼마나 잘 못 끼웠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장완익 특조위원장은 청문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번 청문회를 통해 SK케미칼은 피해자에게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고 LG생활건강은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을 송구하다 했으며 옥시는 치료비 지원 등의 배·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기업의 사과와 약속이 책임 있는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른 시일 내 구체적인 계획과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유해물질 관리 책임을 방기하고 소극적인 대응으로 참사를 막지 못했고 정부의 피해지원은 특별법 취지에 맞지 않게 실효성 있는 지원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번 청문회 내용을 검토해 증인들의 위증과 위법사항이 있으면 검찰 고발 및 감사원 감사 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