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지는 '지소미아 불협화음'…한·미 동맹 균열 '불씨'되나

한·미로 번지는 '지소미아 갈등'

외교부, 해리스 대사 불러 면담
사실상 美에 경고성 항의
정부, 美 압박 과도하다고 판단
조세영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28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엄중히 항의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조 차관이 나가미네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모습. /한경DB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인 건 사실상의 초치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외교 사안으로 미국대사를 소환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어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계기로 한·일 갈등이 한·미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美 국방부까지 지소미아 재고 압박발단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미국의 잇단 우려 표명에서 시작됐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7일(현지시간) 익명으로 “지소미아가 종료되기 전인 11월 22일까지 한국이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고 AFP통신 등을 통해 말했다. 지소미아 효력이 실제로 종료될 때까지 3개월가량 시간이 남은 만큼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랜들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 차관보도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이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지소미아 파기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의 활동은 자유로워진 반면 한·미·일 동맹 구조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공식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미국의 한국 비판에 반색하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NHK,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의 입장을 강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靑 “미국 압박 과도” 판단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7일 국제안보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미국의 공개적인 우려 표명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외교부를 통해 공식 대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에 한·일 갈등의 ‘한국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외교부는 해리스 대사를 부른 배경에 대해 “미국이 우리의 진의를 아직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도 불안해할 수 있으니 미국 측에 다시 한번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미국과 관련 없이 한·일 간 갈등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항의적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해리스 대사는 이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알겠다. 본국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조 차관의 설명에 수긍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결과적으로 한·미·일 3국의 안보 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 측의 기본 인식이다.

29일 해리스 대사가 참석할 예정이던 재향군인회의 초청 안보 강연도 이날 돌연 연기됐다. 일각에서는 이날 조 차관과 해리스 대사의 면담이 행사 연기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한·일 갈등 실타래 풀릴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는 반전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전에 예고한 대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이날 처음 시행했다. 조 차관은 이날 오전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엄중히 항의했다.

외교 채널 간 협의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한·일 양국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간극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다만 양국 외교당국 간 접촉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9일 한국을 방문, 김정한 아시아태평양국장과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양국 간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이 강하게 나선 만큼 한·일 양국이 두 달 사이에 각자 퇴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주용석/도쿄=김동욱 특파원/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