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글로벌경영 '시계 제로'…"또 불확실성 수렁 속으로"

日 수출규제 등 현안 및 중장기 성장 전략 등 차질 '우려'
'현장 경영' 지속 방침 속 파기 환송심 대응책 부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9일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으면서 삼성은 또다시 '불확실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 형국이다.최근 글로벌 악재로 인해 주력인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의 경영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총수가 또다시 당분간 재판 준비에 집중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총수 부재'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부담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디스플레이 업황 부진 등의 악재도 계속되고 있어 삼성의 경영 전략은 말 그대로 '시계(視界) 제로(0)'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날 "기업에 가장 큰 악재는 불확실성"이라면서 "가뜩이나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로 인해 삼성은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퍼펙트 스톰' 속에 갇혔다"고 말했다.
당장 삼성으로서는 현안 대응 능력과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부회장의 거취 변화는 없기 때문에 경영 행보는 계속되겠지만 재판 준비로 인해 일정 부분 경영 차질은 불가피하다.

특히 최근 몇년간 이 부회장 재판 등으로 인해 미뤄왔던 본격적인 '글로벌 전략'에도 또다시 제동이 걸리게 됐다.글로벌 업계에서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기업 간 M&A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으나 삼성은 상대적으로 한발 물러서 있었다.

소규모 투자와 인수는 계속 진행됐지만 대규모 M&A는 지난 2017년 초 미국 전장업체인 하만(Harman)을 인수한 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 올해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투자 계획, 글로벌 AI 센터 설립 등을 잇따라 발표하긴 했으나 최근 몇년간 반도체 실적 호조 덕분에 확보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획기적인 '성장엔진'을 찾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받았다.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불확실성 요인이 추가되면서 당분간 글로벌 M&A나 대규모 투자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2017년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 당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경영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못했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와 관련된 그룹 편법 승계 의혹 등이 여전한 상태여서 한때 거론됐던 계열사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 구조조정 등은 당분간 기약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부회장이 재판 부담에서 벗어날 경우 쇄신 차원에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오히려 2016년과 같이 연말 인사가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삼성이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적용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FCPA는 미국 기업이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1977년 제정한 법이다.

삼성이 미국 업체는 아니지만 2008년 법 개정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돼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삼성 관계자는 "우려가 현실이 됐지만 흔들림 없이 위기 대응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분간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