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이재용 파기환송…삼성 이례적 입장문 "절박·기회 달라" 호소

대법 "박근혜·최순실 이재용 2심 판결 파기환송
이재용 승마 지원 뇌물 인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가 예정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9일 대법원 선고가 끝난 직후 삼성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우려했던 '파기 환송' 판결이 현실화한 데 대한 참담함을 표시하는 동시에 반성과 재발 방지를 다짐하면서 위기 극복과 국가 경제 기여 등을 위해 국민의 성원을 부탁한다는 게 골자였다.삼성은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약 3년간 이 부회장의 구속 기소, 1심 실형 판결, 2심 집행유예 판결 등을 맞으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단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

대법원 선고를 계기로 국민에게 반성의 뜻을 밝히면서 과거 '정경유착' 관행을 인정하고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앞서 삼성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 직후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법원은 이날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2심 재판을 전부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와 다른 공소사실을 합쳐 형량을 선고한 것이 위법하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이 부회장은 최씨 측에 건넨 뇌물액과 횡령액이 2심 때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 등에서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나온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들의 형량은 다시 열리는 2심(파기환송심)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 이 부회장의 경우, 기존 2심 때보다 인정된 범죄혐의가 늘어났기 때문에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한 분리 선고가 이뤄질 경우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날 삼성이 제공한 뇌물액 규모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 중 무죄로 봤던 부분을 추가로 뇌물로 인정했다.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3필과 관련해 말 구입액이 아닌 말 사용료 부분만 뇌물로 인정된다고 본 2심과 달리 말 구입액 34억원을 뇌물로 판단했다.아울러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뇌물 혐의액 16억원도 뇌물액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삼성 측에서는 이 부회장과 관련한 총 뇌물액수가 50억 원을 넘어가게 되면서 실형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모두 변제한 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점,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 70억을 건네 유죄를 받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은 점 등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사유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뇌물액이 50억을 넘긴다 해도 집행유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통상 대법원에서 사건이 파기환송될 경우 6개월~1년내에 확정판결이 나오게 된다.

이 부회장은 여러 대내외적인 악재 속에서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미래를 향한 투자 행보에 고삐를 죄고 있었으나 이번 판결로 재구속의 '공포'에 놓이게 됐다.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에 삼성을 비롯한 재계 전반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한국 제외 조치가 발효된 직후여서 반도체 업황 악화와 함께 한·일 경제 갈등까지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칫 ‘리더십 공백’이라도 야기되면 삼성 경영권은 물론 미래 신산업 추진작업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본 수출규제 강화와 미중 무역전쟁 등 여러 가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경제계의 불확실성이 지속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