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력에 70兆 투입…복지예산 181兆, 3년 연속 10%대 증가

혁신성장·日 보복 대응에 '방점'

12개 분야 모두 증가
산업·SOC·R&D 예산 19% 확대
소·부·장 특별회계 2.1兆+5000억
‘일본 수출규제 대응, 미래 성장동력 확보, 경제활력 제고….’

기획재정부가 꼽은 내년 예산안의 ‘키워드’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짠 지난 2년 예산안에선 볼 수 없었거나 뒷전에 밀렸던 단어들이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업황 둔화, 기업 투자 감소 등 국내외 경기가 나빠진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보복마저 더해지자 ‘복지’에 밀려 조연 역할을 해온 ‘경제’를 주연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찾고 경제를 살리려면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규제 개혁이 병행되지 않은 ‘세금 살포’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 1순위는 극일(克日)”

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은 가장 신경 쓴 항목으로 ‘극일’을 꼽았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우리 기업들이 맞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게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다. 특별회계는 일반회계와 달리 정해진 사업에만 배정된 예산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급하게 돈 쓸 곳이 생겨도 전용할 수 없다.정부는 올해 책정한 소재·부품·장비 예산 8000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2조1000억원가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돈이 더 필요할 경우 곧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목적예비비도 5000억원 증액했다. 이 돈은 연구개발(R&D)과 각종 실증·테스트 장비를 구입하고 실험하는 데 쓰인다.

일본에 대응해 ‘글로벌 우군’을 확보하는 데도 목돈을 투입한다.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공공외교 예산을 213억원에서 479억원으로 늘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계 오피니언 리더 등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역사·정책을 알려 한국 편을 많이 만드는 데 쓸 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의 분쟁에 대비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법률자문 지원 예산도 49억원에서 163억원으로 확충한다.

혁신성장+경제활력 19% 증액내년 예산안에서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분야는 혁신성장과 경제활력 부문이다. 전체 12개 분야 중 △산업·중소기업·에너지(18조8000억원→23조9000억원·27.5% 증가) △R&D(20조5000억원→24조1000억원·17.3%) △사회간접자본(SOC·19조8000억원→22조3000억원·12.9%)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3개 부문 예산은 올해 59조1000억원에서 내년 70조3000억원으로 19.0% 확대된다. 전체 예산증가율(9.3%)의 2배가 넘는 수치다. 12개 분야 중 두 자릿수 인상된 건 이들 3개 부문과 환경(19.3%) 복지(12.8%) 등 5개였다.

정부는 혁신성장에 속도를 내기 위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플랫폼인 ‘D·N·A(데이터·5G 네트워크·AI)’에 1조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자동차 등 정부가 꼽은 ‘빅3’ 산업에는 나랏돈 3조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이런 산업을 키울 인재 4만8000명을 배출하기 위해 6000억원을 들이기로 했다.

경제활력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는 SOC를 택했다. 4000억원을 들여 상수도관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탑재해 실시간 수질·수량을 관리하는 등 ‘스마트 인프라’ 구축사업에 나선다. 도서관 주민센터 등을 짓고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생활 SOC 사업에도 10조4000억원이 투입된다.규제개혁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내년 예산안에 대해 “방향은 잘 잡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란 반응을 내놨다. “혁신성장과 경제활력을 위해선 규제 합리화가 재정투입보다 효과적”(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란 이유에서다.

정부가 내년 예산투자 1순위로 꼽은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그렇다. 화학물질관리법 등 환경규제와 산업안전보건법 주52시간제 등 노동규제 완화 없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건 쉽지 않아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본을 하루라도 빨리 따라잡으려면 핵심원료를 손쉽게 들여와 밤낮없이 일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류재우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렵다고 무작정 재정지출을 늘리기보다는 규제완화와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2.9%내년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 증가율. 올해 SOC 예산은 지난해보다 12.9% 늘어난 22조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SOC 관련 예산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오상헌/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