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급락…2015년 악몽 재연되나"…32兆 ELS 투자자들 '좌불안석'

시위 장기화에 H지수 '출렁'
투자자들 "내 돈 괜찮나" 문의↑
한달새 ELS·DLS 발행액 반토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중 무역전쟁, 홍콩 시위 격화 등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극대화하자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 투자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ELS·DLS는 투자한 상품의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의 50~55% 밑으로 떨어지면 손실을 보게 된다.

하반기 들어 글로벌 자산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어 ELS·DLS 투자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 2014~2016년 홍콩H지수와 국제 유가 급락이 겹치면서 상당 규모의 ELS·DLS가 큰 손실을 본 적이 있어 이번에도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최근 금리연계형 DLS 사태까지 겹쳐 ‘L(linked·연계)’자가 들어간 상품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L의 공포’다.얼어붙은 ELS·DLS 시장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ELS와 DLS 파생상품 발행이 급감했다. 투자자들의 기피 현상으로 수요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8월 1~28일 ELS와 DLS 발행금액은 총 6조2647억원으로, 올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달(발행액 10조8812억원)의 57.5%, 올해 최대를 기록한 4월(13조255억원)의 48.0%에 불과한 규모다.
이달 발행액이 급감한 데엔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금리연계형 DLS의 대규모 손실 위험 사태 △홍콩증시 등 글로벌 자산시장 변동성 확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증권사 서울 강남 프라이빗뱅킹(PB)센터장은 “ELS·DLS 및 관련 금융투자상품에 수억원을 넣어두고 일절 연락이 없던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금리연계형 DLS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보도되자 가입한 상품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왔다”고 말했다.다른 증권사 한 지점장은 “이달 들어 홍콩H지수가 한때 10,000 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손실 가능 구간(녹인 배리어)에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일반 투자자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국내에서 발행돼 상환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ELS 상품은 32조원어치에 달한다.
2014~2016년의 악몽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서현역지점장은 “ELS·DLS 투자 경력이 오래된 투자자일수록 기초자산 가격 조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대부분 2014~2016년에 대규모 손실을 봤거나, 손실 위험에 직면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제 금융시장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켰던 상품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다. 2015년 5월 26일 14,801.94로 장을 마쳐 연중 최고점에 도달했던 홍콩H지수는 이후 홍콩달러 약세로 인한 자본유출로 1년간 조정이 이어졌다. 2016년 2월 12일엔 ELS 발행 당시 설정된 손실 가능 구간 밑인 7505.37로 최저점까지 추락했다. 증권업계에선 이로 인해 2015년 4~5월 발행된 10조4321억원 규모의 ELS 중 절반인 5조원어치가량이 2016년 초 대거 손실 구간에 접어든 것으로 추정했다.다행히 이 사태는 2017년 말~2018년 초에 안정적으로 마무리됐다. 손실 구간 진입으로 상환을 미룬 투자자들은 글로벌 증시 강세에 힘입어 홍콩H지수가 가입 시점의 80% 수준인 12,000선 위로 올라와 대부분 투자원금의 25~30% 수익을 내고 상환받았다.

서부텍사스원유(WTI) 등 국제 유가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도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미국 셰일원유 붐 등에 따른 공급과잉으로 WTI는 2014년 6월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떨어지기 시작해 2016년 2월 20달러대로 추락했다. 이후 가까스로 반등했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원금을 까먹은 채 손실을 확정지었다.

“대규모 손실 가능성 낮지만…”하지만 우려와 달리 현재 발행된 대부분의 ELS 상품은 아직까진 손실 위험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DLS도 문제가 된 금리연계형 상품 외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홍콩H지수 연계 ELS의 경우 올해 가입한 투자자는 아직 원금 손실 구간까지 여유가 있다.

홍콩H지수가 올해 최고치로 치솟았던 지난 4월 17일(마감지수 11,838.98)에 녹인 배리어 55%짜리 ELS에 가입했다고 가정할 경우 지수가 6511.43 밑으로 떨어져야 손실을 보게 된다. 홍콩H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3월 이후 한 번도 7000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DLS는 녹인 배리어에 진입하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대로 떨어져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ELS나 DLS도 펀드나 주식과 마찬가지로 ‘몰빵 투자’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 1~2주 차이로 녹인 배리어 진입 여부가 갈리는 만큼 가입 시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강우신 지점장은 “수익이 매달 지급되는 월지급식 ELS, 조기상환 가능성을 높인 리자드형 ELS 등에 섞어 투자하면 원활한 현금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자산시장 조정으로 ELS·DLS의 기초자산이 많이 낮아진 만큼 신규 가입을 고려 중이라면 지금 적극투자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근호/송종현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