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즌만에 복귀 전창진 감독 "예전에 받은 상패, 전부 버렸어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 달라진 모습으로 KBL에 모범 되겠다"
"음료수 하나로 여관에서 사흘 버티기도…근성 있는 팀 만든다"
2018-2019시즌이 끝난 뒤 프로농구는 전창진(55) 감독의 복귀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전주 KCC는 2018-2019시즌 도중 수석 코치로 선임하겠다며 KBL에 전창진 감독에 대한 징계를 풀어달라고 했다.

KBL이 이를 불허했고 법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최종 확정된 지난 7월에서야 전창진 감독은 KCC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

원주 TG삼보와 동부(현 원주 DB)를 이끌며 '치악산 호랑이'라는 애칭을 얻은 전창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세 번이나 차지했고 부산 kt로 옮겨서도 한 차례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감독상을 다섯 번이나 받아 최다 수상 기록을 혼자 보유하다가 동기인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2018-2019시즌에 다섯 번째 상을 받아 전 감독과 동률이 됐을 정도로 전 감독은 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안양 KGC인삼공사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2015년 5월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에 대해 2016년 9월 검찰로부터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전 감독은 단순 도박 혐의에 대해서도 올해 6월 무죄 판결을 받고 KCC 지휘봉을 잡았다. 징계가 풀린지 약 2개월이 지나 경기도 용인의 KCC 체육관에서 만난 전창진 감독은 인터뷰 초반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등 '치악산 호랑이'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받은 감독상 등 상패들을 싹 다 버렸다"며 "그때는 그런 게 다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t 감독이던 2014-2015시즌 이후 5시즌 만에 다시 프로농구 벤치를 지키게 되면서 세운 목표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것은 없다"고 고개를 내저은 그는 "다만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고, KBL에서도 그래도 많이 모범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듣고 싶다"고 소박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처음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할 때를 회상하며 특히 '대포폰'을 썼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7월 1일 KBL 징계가 풀린 뒤 기자회견에서도 질문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전 감독은 "그때 제가 체육관에 나가지 못한 경기가 있었는데 kt 구단에서 과로에 따른 입원 치료라고 해명 자료를 냈지만 사실은 심근경색이었다는 기사가 나왔다"며 "이후 주위에서 하도 많이 전화가 와서 전화기를 잠시 꺼놓고 병원에서 돌봐주던 동생에게 '대신 쓸 전화기를 하나만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kt 구단과도 사실상 결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가 썩 좋지 못해 회사에서 지급한 전화기를 쓰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는 것이다.

전 감독은 "그래서 받은 전화기로 기자들은 물론 여러 사람과 통화했는데 유독 그 돈 문제가 얽힌 사람들하고만 통화한 것처럼 몰아갔다"며 "물론 예전에 제가 카드놀이를 좋아하는 등 공인으로서 그런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한 점은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4년간은 전 감독에게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었다고 했다.

이때 체중이 15㎏이나 빠졌다는 전 감독은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정말 제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다"며 "가정도 이렇게 저렇게 정리가 되고 여관에 비치된 음료수로 사흘간 버틴 적도 있었다.

돈이 없어서…"라고 떠올렸다.

그는 "그렇게 지냈는데도 여전히 '일본에서 빠징코를 한다더라'거나 '미국 카지노를 다닌다더라'하며 뒷말이 나왔다"며 "변호사도 누구인지 공개가 돼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제 근황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도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농구 얘기로 돌아가자 그 역시 예전 '승부사'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 감독은 "시즌을 준비하는 마음이 처음 감독이 됐을 때인 2002년만큼 간절하다"며 "KCC가 작년에 4등을 했기 때문에 올해 그 아래로 내려가면 팬 여러분들의 실망이 클 것"이라고 조바심을 냈다.

지난달 강원도 태백에서 체력 훈련을 마친 그는 "선수들도 잘 따라오고, 저도 어느 정도 탄력을 받아 훈련을 열심히 또 재미있게 했다"며 "다만 농구라는 것이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결과를 내야 하므로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센스 등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TG삼보 시절에는 김주성, 자밀 왓킨스라는 높이의 농구를 했고, kt에서는 모션 오펜스로 움직이는 농구에 초점을 맞췄다"며 "일단 KCC에서도 높이보다는 스피드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득점에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선수를 제임스 메이스로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스는 지난 시즌 창원 LG에서 뛰었지만 '너무 혼자 하는 농구'라거나 '감독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가가 따라붙은 선수다.

특유의 '용장 리더십'으로 외국인 선수도 강하게 질타하며 조련하기로 유명했던 전 감독이 다음 시즌 메이스와 어떤 호흡을 보일 것인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전 감독 역시 "저보고 메이스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한다"며 "그런데 제가 주위 우려처럼 외국인 선수를 강하게만 다루고 그러지 않는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찰스 로드에게 호통치는 장면을 많이 말씀하시지만 로드는 저하고 같이 있을 때 제일 잘했고, 지금도 저하고 관계가 아주 좋은 선수"라며 "메이스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KBL은 쳐다도 안 봤을 정도의 경력을 지닌 선수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서 많은 대화를 하면 충분히 팀에 녹아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심판에게 큰 몸동작으로 항의하던 전창진 감독의 벤치 스타일도 이번 시즌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전 감독은 "그것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예전에는 우승해도 주위에서 다들 '김주성 덕분'이라며 '초짜 감독' 취급을 하고 그러셔서 제 나름의 피해 의식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래서 불합리한 판정이라고 생각하면 과하게 항의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팬들이 원하지 않으시니까 벤치 스타일도 달라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 감독은 "사실 이제 경기에서 이기다가 패하면 '토토 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고 항의하면 '예전하고 똑같네' 하는 말들이 나올 것"이라며 "하지만 4년 살면서 힘든 일을 겪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힘들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연고지 행사에서 처음 팬들과 만났다는 그는 "팬들을 오랜만에 만나니까 정말 반가웠다"며 "물론 대면하는 자리라 욕을 안 하신 건지는 몰라도 그래도 격려 말씀들을 해주셔서 힘이 많이 됐다"고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전 감독은 "기회를 주신 KCC 구단에도 흠이 되지 않게끔 갚아나갈 생각"이라며 "그동안 KCC가 '슬로 스타터'라고 시즌 초반에 부진한 경우가 잦았는데 올해는 그런 것 없이 처음부터 근성 있게 포기하지 않고 덤벼드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팬 여러분께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고 송교창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도 잘 키워내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감독상 최다 수상 기록을 함께 보유한 동기 유재학 감독과 라이벌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냐'는 물음에 전 감독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라이벌은 무슨…"이라며 "거기는 쳐다도 안 보고 있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최형길 KCC 단장이 "쳐다도 안 보는 게 아니고 쳐다도 못 본다는 표현이 맞지"라고 면박을 주며 껄껄 웃었다.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CC는 9월 필리핀 전지훈련과 마카오 국제대회 참가 등으로 10월 5일 시즌 개막을 준비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