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통일 예멘의 비극

남북으로 갈라졌던 예멘이 통일된 것은 1990년 5월이었다. 동·서독 통일보다 4개월 앞섰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것과 달리 남·북예멘은 ‘합의 통일’을 이뤘다. 냉전 국가 중 최초로 ‘기적적인 통일’을 일군 사례로 평가 받았다. 그런 예멘이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29년 만에 다시 갈라질 위기에 처했다.

예멘 내분의 배경에는 지배세력 간의 권력 다툼과 이념 갈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나라는 1918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북예멘(예멘아랍공화국)과 1967년 영국에서 벗어나 소련식 사회주의를 택한 남예멘(예멘인민민주공화국)으로 분리됐다가 70여 년 만에 극적으로 통합했다.그러나 사회통합에는 실패했다. 인구가 많은 북예멘 쪽으로 권력이 쏠리면서 남예멘 쪽의 불만이 누적됐다.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졌던 남예멘 지역의 빈곤 문제도 심각했다. 이 때문에 통일 4년 만에 내전을 겪었다. 북예멘의 승리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됐고, 유전을 둘러싼 이권다툼까지 겹쳤다.

또 다른 뇌관은 종교 갈등이었다. 시아파 무장 단체 후티가 반란을 일으켜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예멘 정부는 수니파 아랍국의 도움으로 아덴 등 남부 지역을 수복했다. 지난해 말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이번에는 옛 남예멘 지역의 분리주의 세력이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남부 예멘 자치정부 설립’을 내세우고, 정부군은 ‘반군 퇴치 후 중앙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싸우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웃나라들의 개입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란은 후티 반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엔 이슬람국가(IS) 세력까지 가담해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전쟁 속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919달러로 북한(약 1200달러)과 함께 최빈국 그룹에 속한다.한때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무역 중심지였던 예멘이 ‘준비 안 된 통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 현실을 돌아본다. 국제 사회가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이 통일을 준비하려면 독일보다 예멘 사례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도 되새기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