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태 혁신 제약사 톱10에 한국은 전무(全無)"가 보여주는 현실

글로벌 분석기관인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최근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제약사 혁신 순위’는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 제약사는 단 한 곳도 특허와 신약개발 역량 등을 점수로 매긴 ‘혁신 순위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중소 제약사 혁신 순위에서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업체인 제넥신(10위)이 10위권에 겨우 턱걸이를 했다.

역대 정부들이 ‘바이오 강국’을 내걸었고, 문재인 정부도 바이오헬스를 미래자동차 시스템 반도체와 함께 혁신성장을 이끌 ‘3대 신(新)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바이오헬스의 핵심 중 하나인 제약산업만 봐도 그렇다. 혁신 대형 제약사 부문에선 일본(10위권 중 9곳)에, 혁신 중소 제약사 부문에선 중국(10위권 중 6곳)에 크게 밀리고 있다. 제약사의 분발도 필요하지만 시늉에 그치고 있는 규제혁파 탓에 연구개발마저 여의치 않아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다.세계 각국이 ‘선(先)허용-후(後)규제’로 바이오헬스를 핵심 산업으로 키우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일부 시민단체와 기득권 반발 등을 이유로 규제혁파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배아(胚芽)연구 제한, 엄격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 규제,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신약 약가(藥價), 원격 진료 및 조제 금지 등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가 넘쳐난다. “규제를 피해 미국에서 연구하고, 일본에서 유전자 치료를 받는다”는 업계와 환자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 곳곳에서 나오는 지경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차량 공유 서비스 등 다른 신산업 분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신산업 핵심 법안은 제대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국회에 방치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성장 인재 20만 명 육성’ 같은 정부 청사진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규제 걸림돌을 확 걷어내지 않는 한 혁신성장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