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명문가(家)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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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최고 명문가인 발렌베리 가문은 세계적인 기업 100여 개의 지분을 갖고 있다. 보유 자산이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에 이른다. 150여 년간 5대에 걸친 세습 재벌인데도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경영진의 능력과 가문의 품격이 조화를 이루는 모범적 가족경영기업의 표본이기도 하다.
이 가문의 최고경영자 승계 조건은 까다롭다. 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복무해야 한다. 나라 밖에서 공부한 뒤 글로벌 금융회사에 들어가 혼자 힘으로 국제 감각을 익히고 인맥을 쌓아야 한다. 국가에 대한 책무와 자립정신을 지키면서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실천해야 한다.영국의 500년 정치 명문인 처칠 가문도 국가와 공익에 헌신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17~18세기 장군 존 처칠 공작의 9대손인 윈스턴 처칠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해·공군장관과 군수장관 등 국방부문 수장을 네 차례 역임했다. 엄격한 규율과 독서·교육을 중시하는 처칠 가문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책과 신문으로 세상 보는 안목을 넓혀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미국 명문가는 어떤가.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정치 명문가’로 1위 케네디 가문을 비롯해 루스벨트, 록펠러, 해리슨, 애덤스, 부시 가문 등을 선정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덕목은 ‘개인의 책임과 독립’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케네디 가문은 책임과 경청, 배려와 신뢰를 중시하는 ‘식탁 교육’으로 자녀들을 키웠다. 부시 집안은 필요한 게 있어도 먼저 주지 않고 스스로 구하도록 했다.
일본의 정치 명문으로는 ‘일본판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세 차례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네 차례에 걸쳐 최장수 총리를 맡고 있는 아베 신조 가문이 꼽힌다. 엊그제 ‘차기 총리감 1위’에 오른 고이즈미 신지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차남이다. 다만 일본 특유의 지역구 세습 등 족벌정치 때문에 국민의 존경심은 서양에 비해 덜한 편이다.어떻든 정치·경제 명문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은 유권자와 시장의 지지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한국에는 이렇다 할 명문가가 아직 없다. 국가 경제 발전에 오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세계적인 명문가의 탄생에는 대를 이어 덕목을 쌓는 ‘품격의 축적’이 필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이 가문의 최고경영자 승계 조건은 까다롭다. 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복무해야 한다. 나라 밖에서 공부한 뒤 글로벌 금융회사에 들어가 혼자 힘으로 국제 감각을 익히고 인맥을 쌓아야 한다. 국가에 대한 책무와 자립정신을 지키면서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실천해야 한다.영국의 500년 정치 명문인 처칠 가문도 국가와 공익에 헌신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17~18세기 장군 존 처칠 공작의 9대손인 윈스턴 처칠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해·공군장관과 군수장관 등 국방부문 수장을 네 차례 역임했다. 엄격한 규율과 독서·교육을 중시하는 처칠 가문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책과 신문으로 세상 보는 안목을 넓혀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미국 명문가는 어떤가.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정치 명문가’로 1위 케네디 가문을 비롯해 루스벨트, 록펠러, 해리슨, 애덤스, 부시 가문 등을 선정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덕목은 ‘개인의 책임과 독립’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케네디 가문은 책임과 경청, 배려와 신뢰를 중시하는 ‘식탁 교육’으로 자녀들을 키웠다. 부시 집안은 필요한 게 있어도 먼저 주지 않고 스스로 구하도록 했다.
일본의 정치 명문으로는 ‘일본판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세 차례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네 차례에 걸쳐 최장수 총리를 맡고 있는 아베 신조 가문이 꼽힌다. 엊그제 ‘차기 총리감 1위’에 오른 고이즈미 신지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차남이다. 다만 일본 특유의 지역구 세습 등 족벌정치 때문에 국민의 존경심은 서양에 비해 덜한 편이다.어떻든 정치·경제 명문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은 유권자와 시장의 지지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한국에는 이렇다 할 명문가가 아직 없다. 국가 경제 발전에 오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세계적인 명문가의 탄생에는 대를 이어 덕목을 쌓는 ‘품격의 축적’이 필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