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디스트로이어' '안나', 잡초 같은 강인함 vs 냉혹한 살인병기

상반된 두 여전사의 범죄·액션 스릴러
‘디스트로이어’
강인한 여전사 캐릭터를 내세웠지만 표현 방식은 상반된 두 액션 영화가 잇따라 선보여 눈길을 모은다. 할리우드 스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디스트로이어’(19일 개봉)와 ‘레옹’ ‘니키타’의 뤽 베송 감독이 연출한 ‘안나’(상영 중)다.

캐린 쿠사마 감독의 ‘디스트로이어’는 연인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복수극이다. 주연을 맡은 키드먼이 파격적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피부는 주름지고 거칠며 코는 부러져 있다. 늙고 추한 얼굴에다 알코올중독까지 겹친 경찰 에린이다. 에린은 ‘한 놈’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범죄조직에 잠입해 수사하던 17년 전 연인이자 동료 경찰을 죽인 범인이다. 에린의 딸은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반항한다. 왜일까.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에린의 사연을 들춰낸다.에린은 강인한 정신력과 달리 몸은 허약하다. 늘 취해 있는 그는 용의자들과 싸울 때 뭇매를 맞고 나뒹굴어지기 일쑤다. 주변인들로부터 멸시와 수난을 당한다. 단서를 얻기 위해 용의자의 성욕 본능까지 충족시켜 줄 정도로 수사과정도 비루하다. 이 모든 것이 에린의 흠집 많은 과거에서 기인한다. 에린을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복수심이다. 그리고 딸이 더 이상 비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에린이란 캐릭터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한 방에 악당을 때려잡는 호쾌한 영웅 캐릭터가 아니라 밟아도 일어서는 잡초 같은 인물이다. 현재의 추한 모습은 상처가 깊고, 지난 세월도 험난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치다.

‘안나’
‘안나’는 냉전시대 옛 소련 스파이 킬러에 대한 이야기다. 러시아 모델 출신 배우 샤샤 루스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안나는 에린과는 달리 철저히 비현실적인 영웅캐릭터다. 초인 같은 무술과 사격 솜씨로 타깃을 단박에 제거하는 특급 살인병기다. 프랑스 파리에서 톱모델로 위장해 활동할 만큼 미모를 자랑하는 그는 ‘니키타’와 달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인계를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그가 사는 목적은 오로지 KGB로부터의 자유다. 여기서 관객들은 안나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다.안나를 조종하는 KGB 리더 올가는 더욱 강한 여성이다. 국가와 기관을 위해선 살인 지시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인물이다. 올가를 연기하는 노배우 헬렌 미렌은 이 시대 ‘걸크러시’의 대표 격이다. ‘조지왕의 광기’ ‘칼의 고백’ 등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받은 그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디스트로이어’와 비슷하지만, 시점 이동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다. 이야기의 맥락이 흔들리며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