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러시아, 안보장관회의 5년만에 재개…해빙 첫단추?

마크롱 역설 '러시아 포용론' 첫 단계…모스크바서 우크라이나문제 집중 논의
미 국방 "러시아를 정상국가처럼 행동하게 만든다면 좋겠지만…" 회의적 시각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중단된 프랑스·러시아 안보 관계 장관회의가 5년 만에 재개된다. 8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외무부·국방부에 따르면,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과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이 9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외무·국방장관과 2+2 형식의 안보관계장관 회담에 참석한다.

5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란 핵문제, 시리아 분쟁 등 유럽과 러시아가 얽혀있는 주요 안보 이슈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연례 안보 관계장관 회담은 지난 2002년 시작했지만,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한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뒤 중단됐다.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불법 침탈로 규정하고 이후 러시아에 각종 제재를 부과해왔다.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이날 C뉴스·유럽1 방송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문제는 모스크바 대화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양국 장관들은 회담에서 이란 핵문제, 시리아 분쟁, 리비아에서의 군사적 긴장 등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르드리앙 장관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 "우리가 제재를 풀기 위해 모스크바에 가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안정에 진전이 있어야만 제재 문제가 다시 논의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안보장관 회의 부활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전면에 내세운 '러시아 포용론'의 일환이다. 마크롱은 그동안 러시아가 서방국가들의 선거에 대한 사이버 개입과 국내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해왔지만, 최근 들어 세계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크라이나·이란·시리아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핵심 플레이어인 러시아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크롱은 지난달 자국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 개최에 앞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대통령 여름별장에 초청해 단독 정상회담을 하는 공을 들인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자국의 대사급 외교관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러시아를 유럽의 일원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런 시각은 시리아 분쟁과 이란 핵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 사회의 주요 갈등이슈에서 러시아가 핵심적인 행위자 또는 후원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방이 러시아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대화를 통한 갈등해소의 기회가 차단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마크롱은 특히 지난달 프랑스 G7 정상담에서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한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 간의 4자 회담(노르망디 형식 회담) 추진을 밀어붙여 이달 중으로 파리에서 회담을 여는 방안을 유력히 검토 중이다.

마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억류 중이던 정치범 성격의 상대국 인사들을 지난 7일 35명씩 맞교환하는 타협을 이뤄내 얼어붙은 양국관계가 개선의 전기를 맞았다는 기대감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마크롱의 전반적인 러시아 포용론에 대해 서방 주요국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더 많은 편이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도 7일 파리에서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의 대(對)러 유화 제스처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를 다시 정상 국가처럼 행동하게 만든다면 매우 좋은 일이겠지만,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하고 크림반도를 병합해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점령하고, 또 발틱 국가들을 위협한 지난 수년간의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