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산법' 꺼낸 北…美에 "핵 보유국 지위·제재 완화" 되풀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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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상태 미·북 실무회담 이달 말 재개 유력북한이 미국에 이달 하순 대화 재개를 제의하며 ‘새로운 계산법’을 다시 강조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보장하고, 유엔 대북제재를 풀어달라는 기존의 주장을 더욱 세게 밀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지난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을 교훈 삼아 전격적으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만남은 좋은 것
무슨 일 일어날지 지켜보자"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세우는 ‘새로운 계산법’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대북제재 완화 또는 해제라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정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나라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이다. 그 외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비공식 인정되는 국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국에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테이블을 박차고 나온 뒤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추가 시설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전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아들이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가입하는 대신 핵 동결부터 하자는 ‘통 큰 전략’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정도 조건은 제시해야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북제재를 풀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북 실무협상이 이달 중 열릴 것으로 기정사실화되면서 양측이 언제 어디서 만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이 시점에 발표할 어떤 만남도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지만, 실무협상 개최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북이 “만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미국 측에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북한에선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가 각각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명길은 하노이 회담 때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의 후임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일단 유럽 등지의 제3국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북 협상 재개가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최근 공식 담화와 선전매체 등을 통해 미·북 대화와 남북관계는 별개라며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측이) 앞으로의 조·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는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19 평양 정상회담 공동선언 합의 등 지난해 이뤄진 굵직한 남북관계 성과가 1주년을 맞지만, 공동 기념행사는 치러지지 않을 예정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실망을 많이 한 상태”라며 “앞으로 남북관계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역할은 더 이상 없다고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