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권력 비판하면 보수, 편들면 진보?
이렇게 해괴한 분류 왜 생겼나
가짜들 설치면서 진보 변별력 상실"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명을 철회해 봤자 이미 잃은 것을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 얻을 것도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 장관이 자진 사퇴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도 같은 심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표현대로 만신창이가 돼버렸지만 현실적으로 장관직을 갖는 것과 갖지 못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처럼 도덕성 문제로 공직 끈이 떨어져버리면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조 장관은 검찰 수사 본격화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더라도 향후 만회를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 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입은 손실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신념인 ‘사람이 먼저다’가 상처를 입었다. 진보진영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나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우리 사람이 먼저다’라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개혁성이 강할수록 인사 청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조 장관을 두둔하면서 다른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대통령의 이런 태도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조국 사태’로 결정타를 맞은 쪽은 이른바 진보진영이다. 조 장관의 낮은 인격과 이중적 삶, 너저분한 변명을 용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입으로는 도덕과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이념적 편향과 정치적 책략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고 반동이었다. 자칭 ‘유튜브 언론인’ 유시민의 종횡무진은 보수, 진보를 떠나 정치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국민들은 이제 진보라는 가치 언어가 일부 진영에서 오·남용되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다. 보수나 진보와 같은 단어는 원래 특정 방향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현실 속에 내려앉아야 비로소 그 방향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것을 보수로 지칭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초의 러시아에선 공산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수로 불렸다. 그렇다면 조 장관의 허물을 한사코 감싸고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검찰에 맹공을 퍼부은 사람들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수로 부르고, 그것을 허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한다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 아니면 수구적인가. 가짜 진보는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진보라는 말은 보수라는 말보다 좋게 들렸다.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는 처음부터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가짜 진보의 도덕적 간판은 철거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타락한 보수의 대안세력을 자처했지만 어느새 그들도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조 장관 임명에 절망하는 청년들의 눈엔 바로 그들이 기득권 사수에 골몰하는 수구세력이다.이제 정치적 사회적 진영을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것은 그만할 때가 됐다. 보수 쪽에는 가짜 보수를 지칭하는 ‘수구’라는 단어가 있지만 진보 쪽에는 가짜 진보를 변별하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가짜들이 진짜처럼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굳이 분류를 하자면 우파와 좌파, 반정부와 친정부로 하는 게 맞다. 마침 조 장관은 이번 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임을 실토했다. 스스로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했지만 방점은 사회주의자에 찍혀 있었다. 그래서 조 장관은 진보가 아니라 좌파 성향의 장관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 좌파라서 존경하는 것은 자유지만 진보로 추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 뒤에 숨을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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