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술녀 "씨받이였던 외할머니, 딸 낳고 버려져" 눈물의 가족사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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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술녀 가슴 아픈 사연 고백한복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스타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가 가슴 아픈 사연을 고백했다.
“어린시절 식모로 생활하기도”
11일 방송된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박술녀가 출연해 이름에 얽힌 가족사를 고백했다.이날 박술녀는 "제 이름 뜻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신다. 제 이름은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눈먼 점술가로 가난과 사투한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박술녀는 "외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앞이 보이지 않으셨다. 아기 때 강아지가 눈을 핥은 후로 앞이 보이지 않으셨다"고 했다.외할머니의 시련을 계속된다. 씨받이로 다른 집에 가게 됐지만 딸을 둘 낳아 쫓겨나고 말았다는 것. 이후 가난 때문에 박술녀의 어머니는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박술녀는 "어머니는 공부를 너무 하고 싶으셔서 동생을 엎고 서당 앞에서 공부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때 삶의 이치와 지혜를 알게 됐다더라"라고 전했다.
가난으로 고생하던 외할머니가 부자가 되라며 지어준 이름이 박술녀였다. 박술녀는 "열두 대문을 달고 산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쉽게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박술녀의 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박술녀의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가장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하루 세 끼를 먹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고. 그는 "상상을 못 할 만큼 배가 고픈 세월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린 시절 남의 집에 ‘식모’로 들어갔던 사연도 털어놨다.
박술녀는 "지금도 기억이 다 난다. 저도 (다른 집에) 식모로도 가 봤다. 아이 봐주는 곳으로 갔다"며 울컥했다.가난하지만 꼭 친척 결혼식에 갈 때는 한복을 입었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박술녀는 한복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박술녀는 옷감에 대해 알기 위해 방직공장을 다녔다.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실력을 쌓았다.
박술녀는 "40년 넘는 세월을 해온 것처럼 한복을 통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누리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