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쏟아진 온정…'도심 움막' 80대 할머니에 새 거처 후원

동물사체 등 7t 분량 쓰레기 나와…철거업체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해 안 돼"
가건물이라는 표현이 사치일 정도로 열악한 공간에 머무르던 80대 할머니가 추석을 앞두고 주변의 도움으로 새 거처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13일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지난 9일 지하철 5호선 청구역 근처 다산동 한 골목에서 대대적인 철거 작업이 벌어졌다.

멀쩡한 건물들이 있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지나다 보면 '저곳에 사람이 산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은 채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그런 공간에 유모(83) 씨는 살았다.

이날 6시간에 걸친 철거 작업 끝에 3.5t 트럭 2대 분량의 폐기물이 나왔다. 철거업체 직원은 "쓰레기가 너무 오래돼 손대면 모두 부스러졌고 쓰레기를 걷어내면 쥐는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사체도 나왔다"며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상식선에선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유씨는 합판, 샌드위치 패널, 천막, 빨랫줄을 얼기설기 엮은 구조물 속에서 쓰레기와 다름없는 고물을 쌓아두고 개 20여마리와 함께 살았다. 그는 동네의 '유명인사'였다.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더미에 목줄 없는 개들이 떼 지어 다니니 민원이 쏟아졌다.

자연스레 인근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사회복지망의 그물이 유씨를 거뒀지만, 그 성정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자신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인 유씨는 자활 근로로 월 100만원가량 벌어오는 50대 아들과 함께 기거했다.

그러나 저장강박증세가 의심될 정도의 수집벽에 "개들과 떨어질 수 없다"며 거처를 고집하면서 시설 입소나 임대주택 입주를 권한 다산동주민센터의 애를 태웠다고 한다.

지난달 폭염과 호우가 반복되면서 동주민센터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대로 뒀다가는 사고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119구급대까지 동반한 설득작업 끝에 유씨는 고집을 꺾고 단기 보호시설인 신당데이케어센터로 옮겼다.
이후 유씨 집을 철거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우겠다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철거 비용도 갑자기 마련해야 했다.

구청과 동주민센터가 수소문해 업체를 섭외했고 철거 비용은 관내 기업과 복지관의 후원에 동주민센터 예산 일부를 더해 준비했다.

유씨의 새 주거지는 원래 자리 옆 빈 건물에 차렸다.

재개발 예정지인 이곳을 관리하는 조합이 재개발 전까지 살 수 있도록 해줬다.

건물 내부 수리는 동대문시장 인테리어 업체들이 모인 집수리 봉사단체 '인디모'가 맡았고 가구까지 후원했다.

수납 선반과 싱크대 등 인테리어 비용 50만원은 한 주민이 개인 후원했다.

동주민센터는 유씨에 대한 장기요양등급신청을 해뒀다.

신청이 수용되면 유씨는 요양보호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중구에 따르면 구 관내 구도심에는 유씨와 같은 주거취약계층이 1천명에 이른다.

회현동 쪽방촌뿐만 아니라 신당동, 황학동, 중림동 등에 쪽방들이 밀집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유씨가 주변 이웃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 밀집 지역에 공동 샤워장이나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는 등 구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