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득분배 나아졌다는 견강부회
입력
수정
지면A34
지니계수는 현 정부 들어“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말 민주노동당 출신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촌철살인 어록의 하나다. 그럼 지금은? 현 정부 집권 후 국민의 살림살이는 과연 나아졌는가?
나빠지다가 올해 멈춰
중산층 비중 되레 하락하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건
'포용적 성장'에도 치명적
정책결과 호도 말고 반성해야
유경준 < 한국기술교육대 교수·前 통계청장 >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질까?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먹고살아야 하니까, 소득 증가를 통한 생계 개선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득분배 개선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집권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전 정부도 역시 ‘고용률 70%, 중산층 70%’로 집권했으니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그럼 현 정부 이후의 소득분배 상황은 어떠한가? 소득주도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소득분배는 지난해 상당히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근데 현 정부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다. 좋아졌다고만 주장한다. 지난해 일부만이 소득통계를 독점하고 엉터리 소득통계 해석으로 책임자가 경질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도 중산층과는 거리가 먼 지수를 제시하거나 근거 자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치를 제시하며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전체의 소득분배가 개선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좋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소득분배 상황에 대해 통계의 특정 부분만 발췌해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 제시하는 소득분배 관련 주장은 다음의 측면에서 사실과 거리가 멀다.
먼저, 특정 부처에서 최근의 연도별 2분기 지니계수를 제시하며 작년보다 올해 전체 소득분배가 개선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계산됐는지 근거도 모호한 틀린 수치다. 소득분배의 상황을 판단하는 통상의 기준은 ①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반영되고 ②1인 가구를 포함하며 ③가구원 수를 반영한 국제기준의 ‘1인가구 포함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이다.또 특정 계층이 아니라 전체 구성원을 포괄하는 가장 보편적인 국제비교 소득분배지수는 지니계수인데, 이 지수는 0에서 1 사이로 계산되며 작을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함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라 최근 4년의 2분기 지니계수를 소수 셋째 자리까지 계산해보면 2016년 0.298, 2017년 0.304, 2018년 0.326, 2019년 0.326이다. 현 정부 집권 후 상당히 나빠지다가 올해 겨우 멈춘 것이다.
두 번째, 중산층의 소득여건이 개선됐다고 홍보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중산층의 기준을 언급하며 중산층의 감소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를 이용해 국제비교에 사용되는 다양한 중산층의 비중을 계산해보면 모두 올해 2분기에 작년보다 감소했다. 특히 전 정부에서 65%로 시작해 70%로 올리겠다는 그 중산층(중간소득의 50~150%) 비중은 작년 61.8%에서 올해 59.9%로 하락했다. 올해 전체로도 60%를 밑돌 것으로 보여 변명의 여지가 없다. 또 최근 소득분배 악화 원인을 고령화로 언급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더 일찍 진전된 나라가 많으며 이들 나라 중에는 이미 소득분배가 좋거나 개선되는 곳도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 중간계층의 소득 증가율이 빈곤층이나 부유층보다 더 증가한 것을 중산층이 두터워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재의 중간계층은 최근의 경기부진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 주장은 단지 살아남은 중산층만이 다른 계층보다 소득이 더 많이 올랐다는 의미인데 참으로 편협하다. 경기부진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피해를 받은 집단은 실직하거나 근로소득이 줄었고, 중산층이었던 자영업자도 급격한 사업소득 감소로 빈곤층으로 추락해 고통받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중간소득의 50% 미만을 버는 빈곤층이 증가(16.1%→17.0%)하고 있는 것은 취약계층 보호에 중점을 두는 ‘포용적 성장’에도 치명적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인상 등으로 혜택받은 집단만 좋아진 것을 마치 중산층이 많아지고 좋아진 것으로 호도한다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책 결과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는 의미다. 정책 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왔으면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반성이 앞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정책이 개선되고 국민 전체의 살림살이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