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재외동포법 20년…아직도 차별받는 귀환 동포

#1. 성이 김씨인 중국동포 A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 귀화신청서에 본관을 '선산'이라고 기재했더니 구청 직원이 "족보나 선산 김씨 종친회 증빙서류를 가져오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족보는 문화혁명 때 태워버려 없고 증빙서류도 제출하기 곤란하다"고 하자 "사는 곳이 서울 구로구니까 구로 김씨로 하라"고 권유했다. A씨는 "본을 안 쓰면 안 썼지 조상을 배반하고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관공서 서류에는 본관이 빈칸으로 남아 있다.

중국동포 가운데 구로 김씨가 가장 많지만 대부분 같은 혈족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주 이씨인데 아들은 부천 이씨, 딸은 금천 이씨로 갈린 경우도 있다.

A씨는 다른 한국인처럼 주민등록증에 한자 성명도 병기하고 싶었으나 구청 직원은 "외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면 모두 한글로만 성명을 적는다"면서 "정 한자를 쓰고 싶으면 개명 신청을 하라"고 했다.
#2. 5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중국동포 B씨는 월 소득이 200만 원에도 못 미치는데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료를 45만 원이나 내고 있다. 아버지와 성인 자녀 2명에게도 각각 부과돼 청구서를 4장이나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은 세대주의 직계존비속, 미혼인 형제자매,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존속까지 동일 세대원으로 인정하지만 이주민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인정한다.

보험료 기준도 내국인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에 따라 산정하는 데 비해 이주민은 전년도 가구당 평균보험료(11만3천50원) 이상을 내야 한다. 경감·면제 대상 등에서도 내국인과 이주민 차별이 존재한다.

3달 넘게 체납하면 체류연장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정부는 보험료를 적게 내고 고가의 진료를 받은 뒤 출국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7월부터 6개월 이상 체류 외국인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으나 부담이 갑자기 늘어난 사례가 많아 관련 단체들이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3. 중국동포 C씨는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동포비자(F-4)를 받았다.

그러나 미용사 자리를 금방 구하지 못해 식당에서 일하다가 적발돼 범칙금을 495만원이나 물어야 했다.

동포비자는 체류기간에 제한이 없는 대신 단순노무직에 취업할 수 없다.

국가기술자격증이 없어도 되는 방문취업비자(H-2)는 만기가 3년이고 1년 10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국적과 상관없이 동포들의 취업 직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출신국이나 자격증 유무에 따라 차등을 두어 계층 간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 우즈베키스탄 동포 D씨는 19세이던 아들을 단기비자(C-3)로 한국에 불러들였다.

당시에는 25세가 돼야 방문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이 찢기는 사고를 당했다.

파견업체와 공장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치료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단기비자로는 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겼기에 고용노동부에 신고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벌금을 무는 것도 큰일이지만 불법노동 사실이 기록에 남으면 나중에 방문취업비자나 동포비자를 못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출신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겪으며 대부분 한국어를 잊어버린 탓에 모국으로 귀환해서도 단순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5. 재일동포 E씨는 조선적(朝鮮籍)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적이 아니라 대한민국(남한)이나 일본 국적을 얻지 않은 동포들에게 일본이 편의상 부여한 임시 국적이다.

일본에서는 특별영주자이고 남북한은 특수한 지위를 인정하지만 나머지 나라에서는 무국적으로 분류된다.

분단된 조국의 어느 한쪽을 택하기 싫었을 뿐인데 친북 인사로 분류돼 오랫동안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었고, 19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간헐적으로 방한이 허용되고 있다.
올해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이 시행된 지 20년을 맞았다.

1999년 9월 2일 제정돼 12월 3일부터 시행됐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재외동포들의 모국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체류자격 제한을 완화하고 부동산·금융·외국환을 거래할 때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이 골자다.

당초에는 재외동포기본법, 혹은 재외동포특례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고 '한민족 혈통을 지닌 자'를 동포로 인정하려고 했으나 외교부가 이견을 보이고 중국은 "왜 우리 국민을 한국 법률로 규율하느냐"며 반발했다.

이에 따라 법률명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고, 제2조 동포의 정의도 1항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재외국민)'와 2항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직계비속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한정했다.

1997년 제정된 재외동포재단법은 1항 재외국민에 이어 2항 '국적을 불문하고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자로서 외국에서 거주·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재외동포법 2조 2항에 따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 후손이 동포에서 제외되자 조선족과 고려인은 거세게 반발했다.

시민단체 등과 함께 단식 항의에 나서는가 하면 헌법소원을 냈다.

2001년 헌법재판소가 평등권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도 국회는 개정 시한인 2003년 12월까지 이견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동포 수백 명이 '불법체류 노동자 강제추방 반대'와 '조선족 재외동포 인정'을 요구하며 84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2항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추가한 개정안이 2004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중국동포 등은 여전히 정부가 시행령, 시행규칙, 비자 발급 지침 등을 통해 법률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법무부는 불법체류자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에 대해 체류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1999년 재외동포법 제정 당시 국내 체류 외국 국적 동포는 6만7천여 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 현재 89만6천331명에 이른다.

국내 체류 외국인(241만4천714명)의 약 37%를 차지한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74만583명(82.6%)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미국 4만5천355명(5.1%), 우즈베키스탄 3만5천745명(4.0%), 러시아 2만7천247명(3.0%), 캐나다 1만6천074명(1.8%) 순이다.

혈통주의가 국제법 정신과 세계화 추세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해도 재외동포법과 재외동포재단법의 동포 정의가 다른 것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국적자를 배제해 일본 조선적 동포를 재외동포법의 사각지대로 남겨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내국인과의 역차별이나 다른 외국인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지만 내국인과의 차별과 동포 간 불평등을 낳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관련 부처와 기관은 '정부는 재외동포가 대한민국 안에서 부당한 규제와 대우를 받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재외동포법 제4조를 준수해야 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