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이 '독선과 불통'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경제 곳곳서 비명 터지는데 "올바른 방향 가고 있다"
"사회 정의와 윤리 무너졌다" 대학교수들 시국선언
"이런 정부가 어디 있나" 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투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우리 경제가 어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8월 고용통계’와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근거로 “정부의 적극적 일자리 및 재정정책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자평했다. 외교 안보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중요하다.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거의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고, 새 지표가 나올 때마다 ‘사상 최악’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 이후 최악’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외교는 말할 것도 없다. 흔들리는 한·미 관계와 한·일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증대 등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투성이다.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듣는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하는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이 인식하는 국내외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진단이 잦아지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우리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는 확증편향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문 대통령이 추석 연휴 직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만 해도 그렇다. 그를 둘러싼 온갖 불법과 편법, 거짓말과 반칙 의혹으로 격앙된 민심을 외면한 것이었다. 연휴를 거치며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될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휴 중 민심은 더욱 사나워졌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 장관 임명이 ‘잘못’이라는 응답이 57.1%로 ‘잘했다’(36.3%)보다 20.8%포인트 많았다. 연휴 직전 조사에서 3.0~12.1%포인트였던 격차가 더 벌어졌다.

교수 사회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사회 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며 조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에 서명한 전·현직 교수의 숫자는 어제 2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할 19일까지는 참여 인원이 훨씬 더 많아질 전망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야당 대표로서는 초유의 삭발 투쟁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문재인 정부가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을 가볍게 넘겨서는 곤란하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조 장관이 퇴진할 때까지 촛불시위를 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에 이른 마당이다.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한 대통령 취임사에서의 약속이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비치는 문제는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무엇보다도 골병이 깊어지고 있는 시장경제 현실을 직시하는 게 시급하다.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제조업과 금융·보험분야 일자리가 줄어들고, 30대와 40대 취업자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세금을 풀어 급조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 덕분에 고용지표가 ‘개선’으로 포장된 걸 갖고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독선을 넘어선 아집, 현장과 현실에 눈감은 불통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