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엔 돼지열병 없다" 자신만만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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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靑 "한국은 안전" 자화자찬“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북한에서까지 발생하고 다 문제였지만 우린 아직 철저하게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정도가 (장관 재임 기간 한 일 중) 칭찬을 받을 사항이라고 봅니다.”
정작 ASF 발생하자 허둥지둥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이개호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11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장관 재임 기간에 잘한 일로 ASF 차단을 꼽았지만, 이 인터뷰를 한 지 불과 6일 뒤에 국내에서 ASF가 발생했다. 이 전 장관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지난달 30일 물러났다.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 전 장관의 인터뷰가 있기 하루 전 비슷한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노 실장은 “아시아 7개국에서 6000건 이상 발생한 치사율 100%의 ASF가 대한민국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구제역 차단에 147일이 걸린 2015년, 383건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던 2016~2017년 겨울과 비교해 보면 우리 축산 농가의 겨울나기가 한층 수월해졌다”고 썼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축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5월 말 북한에서 ASF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국에 ASF가 퍼지는 건 시간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많았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북한에서 ASF가 발생하고 석 달이 지날 동안 국내에서는 발견이 안 됐다는 이유를 들어 ‘자화자찬’을 잇따라 늘어놨다.
ASF가 터진 뒤 정부가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런 가벼운 언행들도 어느 정도 용인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ASF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ASF 발생 원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른다”는 취지의 대답만 반복했다. “발생 경로를 당장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른 시일 안에 원인을 파악하겠다” “가정해서 원인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게 브리핑에서 김 장관이 한 말이었다.대응 과정에서 부처 간 엇박자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야생멧돼지의 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접경지역 14개 시·군의 야생멧돼지 개체 수를 조절하겠다”고 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야생멧돼지 현장통제반을 가동하고 ASF 감염 멧돼지 신고 포상제에 착수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다음날 “야생멧돼지에 의한 2차 전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번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긴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