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스라엘 벤처 강국 이끈 요즈마…"처음부터 세계 겨냥"

요즈마 스토리

이갈 에를리히 지음 / 이원재 옮김
아라크네 / 352쪽 / 1만8000원
농산물 수출로 먹고살던 중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어떻게 오늘날 벤처 강국으로 우뚝 섰을까. 학자들은 그 요인으로 유대인의 타고난 천재성과 담대함을 뜻하는 ‘후츠파’란 특유의 도전정신을 꼽는다. 이와 함께 거론되는 것이 이스라엘에서 벤처 캐피털 혁명을 일으킨 요즈마그룹이다.

‘요즈마’란 히브리어로 ‘혁신’ ‘창의’를 의미한다. 지금은 민영 벤처 캐피털 펀드로 독립했지만 요즈마그룹은 관영 기업인 요즈마벤처캐피털로 시작했다. 요즈마가 이스라엘 전체에 체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관영기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은 <요즈마 스토리>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큰 모험을 감행해 중대한 기회를 이용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정부뿐”이라고 서술한다. 요즈마벤처캐피털에서 국가산업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최초 창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인 ‘TIPS’를 고안하고 운영한 그는 “이스라엘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는 걸 정부가 인식하고 해결책으로 ‘요즈마 펀드’를 조성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한다.

책은 이스라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당시 사회 분위기와 정부가 조성한 펀드가 하나의 독립적 경제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스라엘의 창업가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집안 분위기를 예로 든다. 그의 할아버지는 풀 제조회사부터 깃털 상품 배송회사까지 여러 회사를 창업하고 실패하면서도 계속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설립에 도전했다.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해 공직자가 된 저자가 창업을 부추기는 일에 뛰어든 것 역시 결국 이런 유전자 때문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주변 이슬람국가의 위협과 각종 전쟁으로 인한 불안, 소련 붕괴로 한꺼번에 밀려든 이주민과 치솟은 실업률 등도 요즈마 펀드가 탄생할 수밖에 없던 배경이 됐다.

군인과 장관을 거쳐 총리에 오른 아리엘 샤론의 관료주의적 행태, 미신의 힘을 믿는 이스라엘 재벌그룹 오페르, 인터넷과 미디어 분야의 대가 요시 바르디의 종잡을 수 없는 괴짜적 행태 등 요즈마 펀드와 이를 둘러싼 그룹 내 군상을 그려낸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요즈마 펀드의 화려한 성공뿐만 아니라 초창기 겪은 시행착오와 관료주의 체제 아래 어려웠던 일까지 사실적으로 그린다.한국 창업가의 특성 및 문제점을 분석한 장을 따로 마련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페이스북보다 훨씬 앞서 나온 ‘싸이월드’, 스카이프보다 먼저 창업한 새롬기술의 ‘다이얼패드’, 아이팟보다 먼저 국내 시장을 선도했던 ‘아이리버’ 등 한국 벤처기업을 언급한다. 그는 “싸이월드가 시작부터 세계화를 지향했다면 오늘날 페이스북은 없었을 것”이라며 “글로벌로 나아갔던 이스라엘 벤처들처럼 처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하라”고 조언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