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이야기] 기술 발전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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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4차 산업혁명과 지리세계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세계화에 대해 명쾌하게 해석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를 통해 휴대폰과 이메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물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급격하게 낮아진 통신장벽은 언제, 어디서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방과 연결을 가능하게 했기에 굳이 비싼 집세를, 높은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물리적인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은
물리적 자본이 아닌 인적 자본이 창출
혁신생태계 구축 위한 혁신전략 필요
평평하지 않은 세계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은 명쾌하다. 지식을 공유하는 데 어디에 사는지 중요하지 않은 시대이므로 과거와 달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지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닷컴 광풍이 정점에 달했던 2001년, 전문가들은 신경제는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장소의 자유를 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경력직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인건비가 인도에서 약 4만달러, 실리콘밸리에서 14만달러지만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에 머문다. 미국 내에서도 혁신적인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통신장벽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에도 인건비가 저렴한 도시로 이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에 더 많은 기업이 모여든다. 평평한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실리콘밸리, 뉴욕, 시애틀과 같은 혁신 중심지들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혁신적인 일자리는 저비용 지역들로 분산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혁신 지역의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으며, 그 성장 속도 역시 경제의 다른 부분에 비해 빠르다. 지난 10년간 인터넷, 소프트웨어, 생명과학 분야의 일자리 증가 속도는 전체 일자리 성장률보다 여덟 배 이상 높았다.
기술과 혁신으로 변화하는 지형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그의 저서 <직업의 지리학>을 통해 오늘날 미국의 지형은 평평하기보다 크게 굴곡져 있다고 설명한다. 지도의 한쪽 끝에서는 숙련된 노동력과 강력한 혁신 부문을 갖춘 도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반대편 끝에는 과거 전통적 제조업에 의해 지배됐던 도시들이 오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의 중앙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수많은 도시가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스틴의 경우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인 댄빌에 비해 특허량은 200배 이상 많다. 봉급 차이는 보다 극적이다. 세 번째로 임금이 높은 지역인 보스턴의 고졸 노동자는 네 번째로 임금이 낮은 플린트의 대졸 근로자보다 무려 2만달러 이상을 더 받는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평평해지지 않는 것은 한 기업의 성공이 근로자의 단순한 자질 이상의 무언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바로 생태계다. 혁신 기업들이 의존하는 것은 생산성 높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전체 생태계이기 때문에 지리적인 변화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거지를 옮기지 않는다. 섬유공장은 노동력이 풍부한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지만, 생명공학은 그렇지 않다. 생명공학연구소를 다른 나라에 옮겨서도 동일한 경쟁력을 유지하게 만들려면 전체 생태계가 이동해야만 한다. 똑똑한 사람들 주변에 있다 보면 더 똑똑해지고 혁신적인 사람이 된다. 혁신가들은 서로의 창의성을 발전시키면서 더 성공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도시가 혁신적인 근로자와 기업을 유치하면 다른 혁신가들에게 이곳이 더욱 매력적인 곳이 돼 해당 도시의 경제상황이 변하게 된다. 실리콘밸리에 실리콘이 없고, 시애틀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특화될 특별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중심지가 된 이유다.
국가적으로 줄어든 격차, 지리적으로 늘어난 격차한편, 혁신의 성과는 어느 분야에서 창출된 혁신인지와 무관하게 전 분야로 파급된다. 혁신부문에 종사하는지와 무관하게 국가 전반의 임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부문이 국가 전체의 산업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중요성이 높은 이유다. 전 지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의 혁신은 다른 국가로 이전된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혁신의 성과가 지리적으로 균등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미국 내에서도 일부 남부의 도시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의 경우도 상하이의 1인당 소득은 부자 나라와 비슷하지만, 중국 서부 지역은 그렇지 않다. 중국과 부자 나라 간 격차는 줄었지만, 중국의 지역 간 격차는 분명히 커졌다. 혁신은 이처럼 단지 기술이나 생산성 높은 근로자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지식의 전파가 이뤄지는 환경에 의해 발생한다. 혁신을 위한 다양한 지원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