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 '얼마면 되니' 콘텐츠 가격 경쟁의 모든 것

30대 여성 A씨는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본다. 자주 보다보니 최대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먼저 해당 작품의 주문형비디오(VOD)를 구매할지,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스트리밍(OTT) 플랫폼에서 월정액으로 볼지 생각한다. 영화만 해도 VOD 한 편당 5000~1만원 하니, 차라리 한 달에 1만원쯤 내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OTT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수많은 OTT들 중에서 또 망설이게 된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플레이…. 보다 저렴하게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딜지 이리저리 뜯어본다.

과연 얼마면 될까. 대중들의 복잡해진 셈법에 맞춰 콘텐츠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는 ‘어떻게 해야 우리 플랫폼에 와서 오래오래 머물까’란 근본적인 생각과 연결된다. 대중의 시선을 잡아두는 것은 곧 콘텐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 그러려면 콘텐츠의 질과 가격을 골고루 충족해야만 한다.
이런 현상은 2016년 넷플릭스가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넷플릭스로 인해 콘텐츠 결제 방식이 바뀌며 일어난 변화다. 이전에 작품 당 VOD 개별 결제, 또는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정도였다. 일부 사이트에서 월정액을 운영하긴 했으나, 이용자는 20%에 못 미쳤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대중들의 요금제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정해진 금액에 양질의 콘텐츠를 마음껏 보는 ‘구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콘텐츠업계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영상뿐 아니라 음악, 전자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월정액을 도입했다.

업체 간 눈치 싸움은 OTT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OTT업체들은 가격을 정할 때 넷플릭스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본 가격은 ‘무조건 넷플릭스보다 저렴하게’다. 넷플릭스 요금제는 화질과 동시접속자 수에 따라 9500원, 1만2000원, 1만4500원으로 나눠져 있다. 지상파 3사의 ‘푹’과 SK텔레콤의 ‘옥수수’가 합쳐진 통합 플랫폼 ‘웨이브’는 지난 18일 출범과 함께 넷플릭스보다 약간 저렴한 7900원, 1만900원, 1만3900원 요금제를 내세웠다. CJ ENM의 ‘티빙’은 최신 영화이용권을 제외한 ‘티빙 무제한’을 5900~1만1900원에, 이를 포함한 ‘무제한 플러스’를 9900~1만5900원에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5000원 미만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 어떨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넷플릭스 절반 가격인 5000원보다 저렴하게 하면 ‘국내 플랫폼은 싸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아직은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가격 고민 과정에서 재미있는 결제 방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영상 시장에서 눈을 돌려, 웹툰·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업체는 ‘기다리면 무료’라는 자체 모델을 만들었다. 웹툰 한 회를 본 후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회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한다. 때론 8시간, 1일, 3일,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다들 기다리지 않을까’ 싶지만, 예상 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2015년 1억원 정도였던 하루 거래액은 이달 기준 10억원을 넘어섰다. 재미있는 작품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결제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창작자들을 자극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독자들이 결제 버튼을 꾹 누르도록 매회 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담아내려 한다.그럼에도 유료 가입자를 늘리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넷플릭스 아이디 공유하실 분 찾아요” 같은 글은 그 험난함을 잘 보여준다. 여러 기기로 접속해 고화질의 콘텐츠를 보는 요금제를 선택한 후, 다수의 사람과 아이디를 공유하며 가격 부담을 낮추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승자는 결정되기 마련이다. 팽팽한 가격 ‘밀당(밀고 당기기)’을 끝내고 대중들의 시선을 모조리 사로잡는 곳은 어딜까. 첫 승기는 넷플릭스가 잡았지만, 그 이후는 아직 모른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