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식 '피의사실 공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의사실 공표죄' 논란 가열
"공보 준칙, 검찰에 악용" 국민청원도
"조국 장관 관련 표적 수사 도 넘어

전문가들 "알 권리와 조화 필요"
울산지검이 발간한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책자 /사진=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검찰 수사를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첨예한 대립 구도와 날선 공방이 오가고 있다. 검찰과 경찰 모두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서로의 혐의에 대해 각각 수사중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란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내용으로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수사와 관련된 직무를 행하는 자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을 기소 전 공표할 경우 성립하는 죄다.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부당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된다.

수사기관이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악용해 필요할 때는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반대로 언론 보도가 부담스러우면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앞두고 조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며 압박했다고 주장해왔다.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있었던 간부회의에서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시중에 도는 의혹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명확히 대답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반면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와 관련해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경찰의 수사 내용 유출을 비판했다. 장 의원은 "경찰이 악의적 여론조성을 위해 수사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무차별 유출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라며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검찰에 고발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검경이 수사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을 때 이를 조사할 수 있는 기관 역시 검경뿐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검찰과 경찰이 서로의 피의사실 공표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웃지 못할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앞서 지난 6월 8일 울산지검은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관 2명에 대한 출석을 통보했다. 울산경찰청이 지난 1월 위조약사면허증을 가지고 약을 제조해 구속된 남성의 자료를 배포한 일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7월 22일에는 김성태 한국당 의원이 자녀의 KT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가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정치적 수사"라며 서울남부지검 검사 3명을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검경갈등 우려로까지 이어졌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피의사실 공표로 기소된 사례는 단 1건도 없다.이처럼 피의사실 공표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피의사실'을 피해자를 압박하는 수단, 언론이 부담스러울 때는 취재 회피수단, 때로는 검경 정치 싸움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역시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9년 법무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중 사망한 일을 계기로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만들었다.

해당 준칙에 의하면 수사기관이 언론에 사건 정보를 공개할 때는 수사를 원활히 하고 사건 관계인의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지속됐다. 이에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재임기간동안 형사사건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보 준칙 개정안을 만들었다.

법무부 개정안의 시행 시점도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들이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개정안이 시행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경갈등, 조 장관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여느때보다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이럴때일수록 수사기관과 정부의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조 장관을 지지하는 한 네티즌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법무부의 수사사건공보에 관한 준칙 개선안을 지금 즉시 시행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19일 올라온 이 청원은 하루만에 7316명의 동의를 받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 장관의 수사정보를 유출했다며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40만을 넘은 데 이어 또 다시 나온 검찰의 수사정보 유출 관련 청원이다.

글쓴이는 "현재의 공보 준칙은 '공보의 적정과 수사의 원활을 기하고 사건 관계인의 명예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지켜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검찰에 의해 악용됐다"면서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검찰 개혁을 위해 임명된 조국 장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검찰의 표적 수사가 도를 넘었고 피의사실 유포와 수사기밀 누설이 자행되고 있다"라며 "검찰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검찰을 개혁할 법무부 장관을 표적수사로 압박하여 개혁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검찰의 정치적 표적 수사가 줄고 나중에 무죄를 선고 받더라도 이미 신상이 공개돼 돌이킬 수 없는 명예 훼손을 당하는 억울한 피해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 변호사는 20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논란이 단순히 '피의사실 공표'라는 점을 넘어 국민의 알 권리와 명예훼손이라는 문제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의 관계를 고려해 형법의 피의사실공표죄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헌법상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사실상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법무부와 경찰청 훈령으로 운영되는 수사기관의 현행 공보 준칙·규칙은 법 체계 구조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민지 한경닷컴 인턴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