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韓기업, 지금 같은 지정학적 위험은 처음"

韓·日, 美·中 갈등, 중동 위기 등
전례없는 불확실성 직면 지적
"이런 리스크 30년 더 갈 수도"
< 워싱턴DC서 ‘SK의 밤’ 개최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SK사무소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 캐런 켈리 미 상무부 차관의 축사를 듣고 있다.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일(현지시간) “SK 회장으로 일한 지난 20년간 요즘처럼 지정학적 위험이 비즈니스를 흔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 미·중 무역전쟁, 북한 위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폭에 따른 중동 위기 등으로 한국 기업의 환경이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이다.

최 회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SK사무소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위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지정학적 위험이 30년은 더 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면, 단순하게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여기(위기)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SK의 밤’ 행사는 SK 핵심 경영진이 미국 주요 인사들에게 SK의 글로벌 경쟁력을 소개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로 지난해 시작됐다. 이날 행사장엔 캐런 켈리 미 상무부 차관을 비롯해 프랭크 루카스 오클라호마주 하원의원, 해럴드 햄 콘티넨털리소스 회장, 데이비드 스미스 싱클레어그룹 회장 등 고위급 인사 250여 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LG와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술 유출 관련 갈등과 SK이노베이션 압수수색 등에 대한 질문엔 즉답을 피하고 “잘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LG와의 전기차 배터리 분쟁과 관련해 “선의의 경쟁은 좋지만 한국 기업끼리 싸우는 것은 3년이나 5년 있다 해도 될 텐데 (지금 싸우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태원 SK회장 "내년 계획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지금 문제 해결하는 게 우선…美에 3년간 100억弗 투자할 것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은 “내년 계획을 생각할 정도로 지금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문제를 올해 어떻게든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올해 신경써야 할 현안이 너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유엔총회 기간인 오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SK 차원의 추가 선물(투자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19일(현지시간) ‘SK의 밤’ 행사 연설에서 “최근 3년간 미국에 50억달러를 투자했고 향후 3년간 1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SK는 지난 한 해 동안 일자리 창출, 세금 납부, 교육 제공, 친환경 재료 사용 등을 통해 미국에서 24억달러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며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기업처럼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US인사이더’ 전략을 강조했다.최 회장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 “일본이 진짜로 물건을 안 팔면 다른 데서 구해와야 하는데 핵심 부품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랬다가는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게 되고,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고객들도 다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SK 차원에서 부품 국산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국산화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얼터너티브 웨이(대안)’를 찾아야 한다”며 “파트너링(협업)을 하든지 다른 것을 하든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걸 무기화하는 건 좋은 건 아니다”고 했다. ‘국산화보다 대안을 찾는 게 낫다는 의미냐’는 질문엔 “국산화를 배제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대안이든 먼저 찾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이번 방미 기간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 등과 만나 글로벌 정치·경제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최 회장은 22~23일 뉴욕에서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세계시민상’ 시상식에 참석해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 등 역대 수상자를 만나 글로벌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김재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