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위험사회 생존 전략은 '리스크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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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 투자실패는 곧 리스크 관리 실패두 달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은행 VIP 창구라면서 창구 직원의 권유로 수익률 높은 안전한 상품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는지 조언을 구한다는 얘기였다. 이미 상품 가입을 염두에 두고 보험 차원에서 전화한 눈치였다. 필자는 수차례 그 지인의 위험 투자를 만류한 전력이 있는지라 이번엔 한번 해보라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수익성 앞세우기보다 장기 안정성 추구해
손실·비용 줄이고 본래의 투자가치 높여야
장동한 <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
그 후 TV에서 홍콩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지인이 또 연락을 해왔다. 아무래도 얼마 전 가입한 ELS(주가연계증권)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마침 시간이 나서 지인과 함께 해당 은행에 들러 ELS 상품 설명을 들었는데,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고위험 투자상품이었다. ‘리저드’니 ‘녹인’이니 ‘스텝다운’ 방식이니 필자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물며 퇴직 군인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상품 투자에 창구 직원의 추천에 따라 또 거래 은행의 브랜드를 믿고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한 셈이다.원금이 보장되진 않지만, 자기들이 판단하기에 원금은 물론 지금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 연 4% 가까운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은행 창구 직원은 강하게 권유했을 것이다. 가입한 지 이미 두 달이 넘은 시점이라 해지 페널티도 만만치 않고 투자 기간도 3년으로 아직 여유가 있으니 두고 보기로 했지만, 소위 전문가인 필자로서는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DLS·DLF(파생결합증권·파생결합펀드) 투자 실패로 난리다. 가뜩이나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매우 흐린 가운데 많은 개인투자자가 아까운 투자금을 잃게 된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무겁다. ‘연 4.2%의 대박 상품’이라고 은행이 열심히 광고하고 판매에 열을 올린 DLS·DLF로 인해 결국 투자자들은 원금을 까먹게 됐다. 연 4.2%라는 만기 6개월짜리 본 상품의 최고 수익률도 수수료와 세금 등을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수익은 원금의 2% 언저리가 될 것이다. 실상은 고위험·중수익률의 투자 기피 상품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투기 상품의 소비자는 물론, 판매자도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는 파악된 리스크의 면밀한 분석이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실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 사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을 미리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에 투자했다면 애당초 리스크 관리에 구멍이 난 것이다. 고위험 상품을 과대 포장해 소비자를 오도하고, 투자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판매를 계속했다면 판매자에게 책임이 있다. 비(非)이자수익을 늘리려다 배상책임 리스크에 노출된 셈이고, 이는 은행 평판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관리 감독하지 못한 금융당국 또한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지속가능 성장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비즈니스의 장기 성장을 위해 지속가능 경영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인데, 통상 프로핏(profit), 플래닛(planet), 피플(people)의 3P로 이해하면 쉽다. ‘경제적 수익성’을 바탕으로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에도 힘쓸 때 비즈니스의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수익성 일변도의 과거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웃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젠 성공적인 비즈니스의 정석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비즈니스의 장기적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을까? 답은 리스크 관리에 있다. 우리는 소위 리스크 사회에서 숱하게 많은 리스크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개방화, 국제화와 더불어 리스크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강도 또한 엄청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고 지속 성장을 이어가려면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워야 마땅하다.
나쁜 결과를 초래할 리스크를 예방하고 사고 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사태를 수습해 손실과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해 본래의 투자 가치를 높이는 적극적인 자세 또한 필요하다. 리스크 관리가 리스크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개인이나 비즈니스 지속 성장의 핵심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