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해피엔딩 드라마처럼

박정림 < KB증권 사장 jrpark@kbfg.com >
박정림 KB증권 사장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좋아하는 분야로는 왠지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주중 회사 일로 지친 나를 회사로부터 분리해 쉬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로 드라마 보는 것을 발견했다.

책을 읽다 보면 회사 생각이 자꾸 난다. 토요일이지만 회사에 가야 할 것 같다. 경영서적에서 내뿜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우리 회사에 어떻게 접목할지 형광펜으로 그어가며 읽는다. 회사로의 몰입이다. 그러면 드라마는? 드라마 소재는 대부분 가족관계, 이웃관계, 연인관계, 동료관계 등이다. 기업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현실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인지라 나와 거의 상관은 없다. 회사로부터의 이탈이다. 또한 자주 볼 수 없기에 기쁨은 커지고 몰아볼 수 있기에 시간은 절약된다.주말에 TV를 부여잡고 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쓸쓸한 이유 덕분이다. 가족 중 TV를 보는 사람이 나뿐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TV 채널권을 갖고 쟁탈전을 벌이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제 거실 TV는 거의 꺼져 있다. 식구들 각자가 자기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웹드라마나 스포츠 중계 혹은 유튜브를 보기에 리모컨도 거실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주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하다.

공중파, 종편, 케이블을 돌아가며 몰아본다. 드라마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지만, 또 다른 이유는 사회 현황에 대한 다른 각도의 조명이다. 나와 다른 세대의 관심사와 고민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어 유익하다.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트렌드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드라마 중에 어떤 드라마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촌스럽게도 해피엔딩 드라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 두 회차에 그동안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던 모든 일이 해결되고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해피엔딩. 해피엔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면 방송국 드라마 실시간 게시판을 본다. 우리가 기대하는 틀을 벗어나려고 잠시 슬쩍 시도하는 순간, 시청자 게시판이 이를 가만두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가끔은 권선징악이 흐려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가 해피엔딩을 그렇게 응원하듯, 세상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착하고 따뜻한 과정과 결과가 박수받을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하루도 따뜻한 마음을 끌어안고 출근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