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가치관 정립' 43년째 펼치는 마산합포문화동인회 강좌

오는 26일 500회 강좌…계엄 상황엔 집회허가 받으며 강좌 이어가
십시일반 회원들 낸 회비로 운영, 정치권과는 철저하게 거리 둬
1977년 3월 17일 마산(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희다방'에 지역 문인 20여명이 모였다. 가곡 '가고파'를 쓴 문인인 노산 이은상은 이들에게 '이충무공의 구국정신'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사단법인 합포문화동인회가 40년 넘게 이어온 합포문화강좌의 시작이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하던 시대다. "경제가 아무리 풍요롭다 한들 정신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망한 일"이라는 이은상의 말에 공감한 문인들이 민족문화협회 마산지부란 단체를 만들어 매달 사랑방 강좌를 시작했다.

민족문화협회 마산지부는 1983년 합포문화동인회로 이름을 바꿨지만, 강좌는 매달 이어졌다.

합포문화동인회는 오는 26일 오후 경남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이태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초청해 '정의로운 사람, 정의로운 나라'를 주제로 500회째 강연을 한다. 첫 강연을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다.

42년 6개월을 이어오면서 날씨가 나빠 강연이 연기가 된 3번을 빼고는 매달 강좌를 열었다.

지난해 3월부터 합포문화동인회 회장·이사장을 맡은 강재현 변호사는 "기상악화로 서울에서 비행기가 못 떠 연기된 것을 빼고는 계엄 상황에서도 집회 허가를 받으면서까지 강좌를 쭉 이어갔다"고 소개했다. 서울도 아닌 지방의 문화단체가 이룬 대단한 성과다.

노재봉·강영훈·정운찬 전 국무총리, 모윤숙·정비석·김훈·이문열 등 문인, 김동길·송자·한완상 등 교수, 언론인 송건호, 재야운동가 장기표, 배우 최불암·윤석화, 소설가 등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려와 연단에 섰다.

강연 내용도 조선 임금들의 리더십, 세계평화, 여행, 식량안보, 에너지 정책, 전환기의 국가전략까지 인문학·자연과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40년 이상 회장, 이사장을 맡았던 조민규(84) 고문의 헌신이 컸다.

그는 강좌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손수 풀을 들고 시내 전봇대에 강좌안내 포스터를 붙이고 다방을 전전하며 강좌를 알리기까지 했다.

그가 합포문화동인회를 이끌면서 지킨 원칙은 '운영의 독립성'과 '정치성 배제'다.

어렵더라도 회원 회비에만 기대 모임을 이끌었고 정치권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정치인이지만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경남지사·경남교육감·창원시장은 연임 여부에 상관없이 임기 중 딱 1번만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다.

이 전통은 현재도 이어진다.

강재현 회장은 "최근 들어 지자체로부터 약간의 지원금을 받지만, 지금까지 쭉 관이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십시일반 회원들이 낸 회비로만 운영한다"며 "민간단체가 40년 넘게 매달 강좌를 여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포문화동인회 강좌가 오랫동안 이어진 다른 비결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강 회장은 "회원들은 회비만 내고 강연 준비 의무만 진다"며 "누구나 와서 강좌를 들을 수 있고 좌석이 모자라면 회원들은 서서 듣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500회가 이어지다 보니, 대개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도 합포문화동인회 강연 섭외에는 쉽게 응한다.

강 회장은 "우스갯소리로 서울 학자들 사이에는 합포문화동인회 강연 초청을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며 "긴 세월이 막강한 섭외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읽는 바른 가치관 정립이라는 강좌의 목적은 40년이 지나도 변함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