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북정책 '대전환' 합의…北 '체제보장' 속도 내나

정상회의서 기존 방식 바꿔 새 해법 마련 모색

美, 기존의 '대북관계 개선'서
'관계 전환' 진전된 표현 내놔
< 정의용, 美 새 안보보좌관과 첫 악수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신임 안보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18일 오브라이언 보좌관 취임 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정책을 ‘대전환(transform)’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대적 대북관계를 개선(improve)하는 데 방점이 찍혔던 기존 방식을 바꿔 새로운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강조한 북한의 ‘체제보장’ 조치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살 ‘선물 보따리’를 안겨준 덕분에 거둔 반짝 효과일 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알맹이는 정작 빠져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靑, 11월 김정은 방한 ‘잘 될 것’뉴욕에서 석 달 만에 정상회담을 한 한·미 정상은 북한과의 관계를 대전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미측이 사용한 표현은 관계 전환을 뜻하는 ‘transform’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개선(improve)’에서 상당히 진전된 표현이라는 게 청와대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행동(action)을 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도 군사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제재와 압박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결 원칙을 명시한 것으로 청와대는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새 계산법’ 요구에 호응해 ‘새로운 방법론’을 거론한 것도 대북 정책 전환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적극적인 태도에 연내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3주 안에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고,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참석 여부에 대해서도 ‘잘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도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계사적 대전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대전환’의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밝힌 북한의 ‘체제보장’이 가장 유력한 후속 조치로 거론된다.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탈바꿈하자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북의 ‘이행 조치’에 따른 ‘보상’으로 이 같은 아이디어를 마련했다. 국제사회가 나서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면 한반도 전쟁을 방지할 뿐 아니라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이번 회담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 정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한·미 정상이 재확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차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싱가포르에서 작성된 합의문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에 앞서 새로운 미·북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등장한다.

한국의 비용 부담만 늘어날 수도‘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된 이후 미·북 실무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 역시 호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재확인한 문 대통령은 ‘평화’ 행보에 더욱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임기 내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목표의식 때문에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평화’에 올인할 가능성도 높다.

문 대통령은 25일 뉴욕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평화도, 경제활력도, 개혁도 변화의 몸살을 겪어내야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라다운 나라에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며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했다.하지만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어 갈길이 순탄치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은은 매년 국방비를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볼턴 전 보좌관 이외에도 북한을 아직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이 가득한 상황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재 유지를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내년 대선 전까지 현상 유지만 해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무기 구매나 방위비 분담 등 미국의 바람대로 향후 한국이 비용을 더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뉴욕=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