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막오른 한·미 '쩐의 전쟁'…트럼프 셈법 넘어서려면

트럼프, 연임 노리며 방위비 증액 요구
'주한미군=군사 전략자산' 부각시켜야

이정호 정치부 차장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임대료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재선 캠페인 모금 행사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아파트 월세를 받으러 다닌 시절을 회상하며 꺼낸 말이다. 돈 많은 후원자들 앞에서 자신이 주한미군과 관련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올린 것을 농담조로 자랑하며 생색낸 것이다.그가 언급한 10억달러는 올초 끝난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금액이다. 양국은 최종적으로 10억달러에 못 미치는 8억7000만달러 (약 1조389억원)에 합의했다.

내년도 양국의 방위비 분담금 수준을 결정할 제11차 협상이 지난 24일 시작됐다. 한·미 대표단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까지 양국을 오가며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협상을 벌이게 된다. 이른바 동맹 간 ‘쩐의 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허풍 작전을 동원하며 지원 사격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에 “한국이 방위비(분담금)를 올리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무근의 얘기까지 올리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3만 명 안팎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지원하는 몫이다. 1990년까지는 한국이 토지와 세금 감면을 제공하고, 미국이 자국 군대의 주둔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미국이 동맹국에 안보 비용의 분담을 요구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시작됐다.양국은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예외조치)에 따라 1991년부터 2~5년 단위로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맺어왔다. 올해부터는 미국 요구로 협정 주기가 1년으로 단축됐다. 매년 양국이 분담해야 할 비용을 놓고 새로운 협상 틀을 마련하고, 고도의 수싸움을 벌여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진 것이다.

1991년 1700여억원이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열 차례의 협상을 거치며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돈낭비’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재선 유세에 사용할 선거용 레퍼토리를 짜기 위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지는 방위비 증액 결과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란 판단일 것이다.

동맹을 ‘돈’, 외교를 ‘거래’로 생각하는 트럼프식 논리의 허점을 찌를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주한미군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영향력 유지를 원하는 미국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군사전략 자산이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미군이 처음 한국에 온 건 북한 때문이었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 두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올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최근 잇따라 파열음을 내는 대미 외교의 협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적어도 우리 국민의 지갑에서 나온 1조원 넘는 혈세가 한 정치인의 치적거리나 어느 만찬장의 농담 소재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