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증거인멸' 삼성 임직원 "자료삭제 인정…분식회계는 아냐"

검찰 "피고인들, 분식회계·경영권 승계 내용 너무 민감해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 삼성바이오 자회사 임직원들이 자료 삭제 행위 등을 모두 인정했다.다만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23일 삼성전자 임원들과 삼성바이오 관계자들의 증거인멸·증거인멸교사 등 혐의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김모 부사장과 박모 부사장,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 부사장 등은 자료 삭제 행위와 관련한 객관적 사실관계와 이에 관여했다는 점은 인정했다.하지만 검찰 주장처럼 부당한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고자 분식회계를 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자료를 삭제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들의 변호인은 "삼성바이오는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다"며 "검찰과 금융당국은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의 형사 사건에서 죄가 되지 않는 경우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는지는 법리적으로 의문이 있다"며 "설령 성립되더라도 양형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이에 검찰은 "피고인 측이 분식회계, 경영권 승계 등 내용이 나오면 너무 민감해하는 것 같다"며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안 했다고 자꾸 그러는데, 증거인멸죄가 성립되는 데는 독립된 형사사건의 유무죄 여부는 상관이 없다"고 반박했다.

삼성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들은 공소사실의 사실관계는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법리와 고의성 측면에서 다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양모 에피스 상무는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자료가 삭제 및 변경된 것은 인정한다"며 "금감원 요청과 관련이 없는 내용과 영업 비밀을 제외하기 위해 편집했을 뿐이고, 그 정도 인식만 갖고 있었으니 고의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또 "자료 삭제 지시 및 관여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면서도 "에피스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삼성바이오나 그룹 TF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피고인들도 기소된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며 상부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부사장 등은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되던 지난해 5월부터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내부 문건 등을 은폐·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에피스 임직원들은 직원 수십 명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합병', '미전실' '부회장', '이재용' 등 검색어를 넣어 문제 소지가 있는 자료를 삭제하고 회사 가치평가가 담긴 문건을 조작해 금감원에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회사 공용서버 등 분식회계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물들을 공장 바닥 아래 숨긴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날 2시간 분량의 PPT를 만들어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와 배경, 범행 과정 등을 설명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부정한 회계처리 배경과 동기 등에는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어 불공정했다는 것이 그중 하나"라고 밝혔다.그러면서 "불공정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 개시를 예상한 삼성이 대규모 증거 인멸을 했다는 것이 기소 요지"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