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전세계는 '배터리 전쟁' vs 한국은 '소송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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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시대, 한국 수혜 기대 높지만전기차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해외 정부들이 전기차 핵심 기술 확보에 칼을 뽑아 들었지만, 국내 기업들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다.
▽ LG-SK 국내 기업은 '소송 갈등' 매몰
▽ 중국 이어 유럽도 '배터리 굴기' 가세
▽ '중국 내 한국 기업 퇴출' 교훈 잊었나
◇ 전기차 시대, 국내 배터리 수혜 기대 높지만 26일 업계에 따르면 2020년에는 1회 충전으로 4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3세대 전기차가 등장하며 자동차 시장에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순수전기차(BEV) ID.3를 공개했다. 폭스바겐은 58kWh 배터리를 장착한 ID.3를 내년부터 3만 유로(약 3900만원)에 판매해 전기차 보급을 가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유럽에서 3만대 사전 계약도 이뤄졌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도 모델3를 국내 출시했다. 테슬라는 연말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기에 본격적인 인도는 내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르노는 지난 24일 중국에서 도심형 전기 소형 SUV K-ZE를 출시했다.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200km 남짓이지만, 가격이 우리 돈으로 1037만~1205만원에 불과해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
소비자들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를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행거리와 가격이고, 이를 결정하는 핵심 부품은 배터리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들은 배터리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SNE리서치는 국내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15.8%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3세대 전기차 주요 모델 역시 국내 기업 배터리를 탑재했다. 폭스바겐의 ID.3는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한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테슬라의 모델3에도 LG화학 배터리가 들어갔다. 페라리는 향후 출시할 첫 양산형 전기차 'SF90 스트라달레'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싣기로 했다.◇ 배터리 두고 LG-SK 소송 갈등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을 두고 한국에선 국내 기업끼리 싸움이 한창이다.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기술유출 여부를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인력을 채용하며 기술을 대거 유출했다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자사 특허를 다수 침해했다고 반격했다. 각각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그룹 간 분쟁으로도 비화되는 모양새다.
양사의 ITC와 연방법원 소송 비용은 수천 억원에서 조 단위가 될 전망이다. 초기 배터리 시장을 개척하며 수년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게는 큰 부담이 될 규모다.
올해 상반기 배터리 사업에서 LG화학은 2759억원, SK이노베이션은 1540억원 적자를 봤다. 여기에 소송 비용이 추가되면 사실상 향후 투자가 불가능해지고,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기술 사용이 막혀 배터리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은 국가 차원 넘은 반격 태세
향후 내연기관 자동차가 퇴출되고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면 이 수혜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심기가 불편해진 외국 정부들도 칼을 뽑았다.
최근 프랑스 정부와 독일 정부는 60억 유로(약 7조9000억원)를 투입한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 프로젝트의 세부 계획을 공개했다. 1차로 2조2000억원을 들여 연내 프랑스에 전기차 배터리 파일럿 공장 건설을 시작하고 시범 생산 과정을 거친 뒤 2022년 프랑스, 2024년 독일에 양산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푸조시트로엥그룹(PSA), 샤프트, 오펠, 지멘스, 만즈 등 프랑스와 독일 기업들이 참여한다.
양국은 유럽연합(EU)에 프로젝트 참여 업체들에게 국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승인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자국 배터리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독일 정부는 2차 투자와 기업 참여를 논의하고 있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소송 갈등' 한국…중국 '교훈' 잊었나
국내 기업들은 동일한 상황을 중국에서 이미 겪은 바 있다.
전기차 육성에 나선 정부에게 앞선 배터리 기술을 가진 한국 기업들은 눈엣가시였고, 2016년부터 자국 기업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만 차 값의 30%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자국 기업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퇴출됐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는 최근 발표한 ‘2019년 8차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에서도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업체 배터리를 탑재한 친환경차를 배제했다. 반면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배터리 기업 CATL, BYD 등은 급성장을 거듭했고, 미국 등 해외 진출도 타진하는 수준이 됐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유럽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자동차 업체들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다만 유럽에서도 보조금을 무기로 삼아 자국 기업 육성에 나선다면 중국과 같은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직접 나선 만큼 국내 기업들에게 악몽으로 남은 중국의 배터리 굴기가 몇 년 후 EU차원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시장을 선점하고 보조금으로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추려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에 관해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국내 기업들이 지식재산권 보호를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이라며 "지식재산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선례가 만들어져야 기업들이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