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굴기' 이룬 중국…다음 진격 목표는 수소전기차

2030년 보급 목표 100만대…한국보다 30만대 더 많아
상용화 韓·日보다 늦었지만 강력한 드라이브…인프라 '착착'
승용차보다 상용차 우선 전략…美·日 기업들도 '눈독'
중국 동부 장쑤성의 작은 도시인 루가오(如皐). 아직 논밭이 많은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군(郡)에 해당하는 작은 현(縣)급 도시다.이런 루가오의 경제개발구 한가운데에 얼핏 보면 주유소처럼 보이는 시설이 막 들어섰다.

수소전기차(FCEV)에 수소를 넣어주는 충전소다.

현장에서 만난 국가에너지그룹(CHN ENERGE) 관계자는 "건설을 마치고 지금은 테스트 운영 중"이라며 "조만간 정식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중국 곳곳에서 수소전기차 운행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수소 충전소 건설에 점점 속도가 붙고 있다.

지금껏 세계 수소전기차 시장에서는 현대와 도요타 등 한국과 일본 기업이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후발 주자인 중국의 추격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책의 힘…일단 방향 정하면 '전력 질주'
무엇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이 올해 처음으로 수소 인프라 구축 확대를 중앙정부 차원의 중점 정책 목표로 제시한 점이다.

지난 3월 중국 정부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 보고에는 수소 충전소 건설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연간 정부 업무 보고에 수소전기차 산업에 관련된 내용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전기차 '굴기'(우뚝 섬)를 사실상 이뤄낸 중국이 다음 목표로 '수소전기차 굴기'를 내건 것으로 해석됐다.앞서 중국은 부처 차원에서 수소전기차 발전 장기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공업정보화부가 2016년 발표한 계획을 보면, 중국은 우선 2020년까지 수소차와 수소 충전소를 각각 5천대, 1천소 이상 보급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는 수소차 보급량을 10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각각 제시한 2030년 보급 목표치인 63만대와 80만대보다 많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중국에서 정책의 추진력은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중앙정부가 방침을 제시하면 각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이 일사불란하게 행동에 나선다.

'중앙'의 지시를 잘 이행했는지는 각 지방정부 지도자와 국영기업 최고 경영진의 평가와 직결된다.

상하이(上海)시는 2025년까지 관내에 50곳의 수소 충전소를 짓고 2만대 이상의 수소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한(武漢)시는 내년까지 충전소 20곳을 건설하고 수소전기차 3천대를 생산하겠다는 단기 목표를 제시했다.

공공 교통 분야에서 수소차 도입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 루가오시와 허베이성 랑팡(廊坊)시와 산시(山西)성 다퉁(大同) 등은 현재 수소전기차를 버스를 운영 중이다.

지방 정부들이 경쟁을 넘어 연대함으로써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상하이를 필두로 한 창장 삼각주 일대의 도시들은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주변에 수소 충전소를 공동으로 건설하는 '창장 수소벨트' 계획안을 마련했다.

올해부터 2021년까지는 먼저 상하이와 루가오·쑤저우(蘇州)·난퉁(南通)·닝보(寧波) 등지를수소 차량이 맘껏이동할 수 있는 수소 벨트로 잇고 2030년까지는 상하이와 안후이성·장쑤성 전역을 '수소 생활권'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먼저 점을 찍고 나서 점을 선으로 이은 뒤 선을 다시 면으로 확대하는 개념이다.
이곳 루가오에서도 '수소 경제' 발전을 위한 지방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도농 복합도시인 루가오는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등 장쑤성 내의 다른 산업 도시들보다 낙후한 인구 100만명의 소도시였다.

루가오시는 지난 2011년부터 도시 혁신을 위해 '수소 시범 도시'를 자처하고 나섰다.

'수소 경제'에 도시의 명운을 건 것이다.

수소 산업 유치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 덕분에 현재 연료전지 생산에서 자동차 제작에 걸쳐 20여개의 수소 연관 산업 핵심 기업이 입주해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함께 모여든 협력 업체들이 40여곳을 넘는다.

양페이(楊飛) 루가오 경제개발구 관리위 부주임은 "수소 산업은 한 개의 고립된 점에서 시행해서는 안 된다"며 "그래서 우리는 수소 제작, 저장과 운반, 응용을 아우르는 산업체인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루가오에서는 세계 주요 수소전기차 업계 관계자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26일부터 사흘간 '국제수소연료전지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중국 수소전기차 산업의 상징 도시로 떠오른 루가오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 버스·트럭부터…韓·日과 다른 전략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승용차가 아닌 버스와 트럭 등 대형 상용차 위주로 수소전기차 산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현대와 도요타의 대표 수소전기차인 넥쏘와 미라이는 작년 각각 949대와 2499대 팔렸다.

두 차량 모두 일반 고객을 위한 승용차다.

반면 작년 중국에서 팔린 수소전기차는 총 1천619였는데 이 중 버스가 710대, 트럭 등 나머지 상용차가 909대였다.

중국 정부는 현재의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했을 때 도시 내·단거리·승용차 영역에서는 순수 전기차가, 장거리·대형·상용차 영역에서는 수소전기차가 사업성이 밝다고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아직 다소 낯선 중퉁(中通), 푸톈(福田), 페이츠(飛馳) 등 상용차 브랜드들이 수소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다.

중국이 상용차 중심으로 수소전기차 시장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이미 기술 수준이 높아진 순수 전기차와 달리 연료전지 등 수소차 핵심 기술 개발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에서는 연료전지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기술이 현대나 도요타 등 경쟁사들의 것보다 상당히 뒤처지는 것으로 본다.

장진화(張進華) 중국자동차공정학회 부이사장은 경제참고보와 인터뷰에서 "객관적으로 말해 일부 핵심 기술에서 우리나라의 수소 응용 능력은 (한국, 일본과)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의 추격 태세는 아주 뚜렷하고,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과거 자국의 전기차 시장을 일으킬 때처럼 대대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소전기차 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마침 중국은 내년까지만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2021년부터는 보조금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이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이미 토종 기업들 위주로 성숙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과학기술부장(장관)을 지낸 완강(萬鋼)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수소전기차를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며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는 대신 수소전기차 산업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수소 경제 확대에서 기회를 찾는 중국 안팎의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제2의 주유소' 같은 수소충전소 산업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경기업인 국가에너지그룹이 수소충전소 건설에 앞장서고 있는 가운데 중국 민영기업인 칭펑(HYFUN)과 미국 회사인 에어 프로덕츠 등도 수소충전소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에어 프로덕츠 관계자는 "현재 랑팡시에서 수소 충전소 한 곳을 건설해 주로 현지의 수소전기 버스에 수소를 공급하고 있다"며 "중국 시장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중국 수소전기차 산업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도요타는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과 제휴해 연료전지차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도요타는 베이징자동차 산하의 푸톈의 대형 버스에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하게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