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20세기, 전세계에 상처를 남긴 시간"

예테보리도서전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세미나
"20세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상처를 남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전쟁과 '소년이 온다'의 근원이 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있었습니다.

"(한강)
"시 쓰기 시작할 때는 한국의 현실, 개인적인 현실이 힘들다고 생각해 도피하는 방법으로 썼어요.

그런데 2009년 이후 여러 활동을 통해 거리나 광장으로 나오게 됐고, 그 경험이 시에 반영됐습니다. "(진은영)
2019 스웨덴 예테보리국제도서전 둘째 날인 27일 소설가 한강과 시인 진은영이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 등 비극적인 사건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스웨덴 저널리스트, 시인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한강은 "애초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가 그전까지 썼던 소설들과 달리 역사적인 사건을 담고 있어서 큰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굉장히 개인적인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식주의자'는 마치 한 여자의 정확히 꿰뚫을 수 없는 내면을 따라가는 작은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소설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쌓은 한강의 작품은 스웨덴에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 세편이 번역 출간됐다.

광주 출신인 그가 2014년 펴낸 '소년이 온다'는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그렸다. 한강은 2009년 일어난 용산참사도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한강의 소설 '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고 학살이 자행된 폴란드 바르샤바가 등장한다.

집필 당시 바르샤바에 머물렀던 한강은 "사람들이 총살당한 벽을 보존하고 그곳에 사시사철 꽃과 초를 놓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수도 한복판에서 애도를 해봤나, 그리해야 했던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깝게는 1980년 5월, 더 가깝게는 2014년 봄 비극적인 사건이 한국에서 있었다"며 "그때 애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의미를 담아서 썼다"고 덧붙였다.

진은영도 2009년 용산참사와 2014년 세월호 침몰로 달라진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과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에 관한 대담집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펴냈다.

시인들이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시선에서 남아있는 이들에게 쓴 시를 모은 시집 '엄마. 나야'에도 참여했다.

진은영은 "같은 반 친구들과 배에 타고 수장된 17살 소녀를 상상하면서 시를 쓴다는 게 매우 어려웠다"며 "그런 경험을 어떻게 시로 쓸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유가족들이 굉장히 편안해하실 거라는 독려에 용기를 가지고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17살 아이를 둔 부모님을 위해 시를 쓰는 강력한 압박은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문학을 통해 연대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고 전했다.

2000년 등단한 진은영은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선집 '붉은 눈송이'가 2016년 불어로, '우리는 매일매일'은 지난해 영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날 120석 규모 세미나실을 가득 채운 관람객은 두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수십명의 관람객은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

세미나 주제와 관련된 도서 등 총 131종이 전시된 주빈국관도 관람객과 각국 출판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이번 도서전 세미나에서 소설가 현기영은 '국가폭력과 문학', 소설가 조해진은 '난민과 휴머니즘', 소설가 김금희·김숨은 '젠더와 노동문제', 소설가 김언수는 'IT시대의 문학', 시인 김행숙·신용목은 '시간의 공동체'라는 주제를 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