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①올레길 탐방객 '반 토막'…제주 '걷는 길' 방치되고, 잊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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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생겨난 걷는 길 제주에만 100여개 제대로 관리 안 돼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제주에는 2007년 개장한 제주올레를 시작으로 둘레길과 지질 트레일 등 걷는 길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곧게 난 길이 아닌 지형을 따라 자연에 순응하면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은 '빠름'에 지친 현대인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제주올레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길은 10년 넘는 기간 자연훼손과 난개발을 부추기기도 하고 방치되거나 잊히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 여기도 저기도 '길·길·길'
국내 걷기 열풍을 주도한 제주올레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정규코스 21개와 산간과 섬 등을 걸어서 여행하는 5개 부속 코스 등 모두 26개 코스, 425㎞로 이뤄졌다.
올레길은 2007년 9월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2012년 정규 마지막 코스가 확정되는 동안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행정시와 마을자생단체, 종교계 등도 걷기 열풍에 편승해 지역과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걷는 길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걷는 길로는 한라산을 해발 600∼800m 높이로 도는 한라산 둘레길과 사려니숲길, 삼다수 숲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질 경관을 따라 걷는 김녕·월정, 수월봉,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 등이 있다. 종교를 잇는 순례길도 생겨났다.
제주 천주교 역사 120년 발자취를 따라 걷는 천주교 성지 순례길과 기독교 신앙 궤적을 따라 제주의 속살을 둘러보는 제주 기독교 순례길, 제주 전통 사찰과 문화재 사찰, 불교 관련 토속신앙 터 등을 연결하는 불교 성지 순례길은 신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제주에 유배 온 인물들의 유배 생활을 되짚어보는 추사의 길과 면암 유배길, 이중섭·변시지·현중화 등 예술가들의 삶을 되짚는 작가의 산책길, 해녀의 발자취를 담은 숨비소리길, 옛 제주성 둘레 답사길 등 단순한 탐방로에서 진화해 이야기까지 곁들어진 길도 늘어났다. 이외에도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마을이나 학교에서도 지역의 특색을 담은 걷는 길을 여럿 만들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제주에 64개의 걷기 여행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길까지 포함하면 도내 걷는 길은 100개 코스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올레길 탐방객 5년 새 반 토막…걷는 길 '잊히고 방치되고'
걷는 길이 다양하게 많이 생겨나면서 탐방객들의 선택권은 넓어졌다.
그러나 짧은 기간 우후죽순 생겨난 길은 수년이 지나며 자연훼손을 부추기기도 하고, 방치되고, 잊혀지기도 하며 지역의 문제로 떠올랐다.
제주올레는 여행객 증가에 따른 난개발과 답압(밟아서 생긴 압력)으로 인한 훼손 등으로 자연 생태가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올레 10코스인 경우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했다. 인기 있는 걷는 길 주변은 탐방객과 주민간 갈등도 발생했다.
탐방객 중 일부가 쓰레기를 투기해 주민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주차난이 심화하기도 했다.
또 불법 노점상까지 자리 잡으면서 오히려 제주 관광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사례도 있다.
올레길이 최고 전성기를 누린 2013년 제주올레 코스 일부 구간에 운영되고 있는 노점상에 대한 첫 강제철거가 이뤄졌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결국 2013년 119만명이 찾으며 정점을 찍었던 제주올레 탐방객 수는 2014년 118만명, 2015년 94만명, 2016년 68만명, 2017년 64만명, 2018년 58만명 등으로 5년 새 반 토막이 났다.
게다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잊히는 길도 생겼다.
제주올레 20코스(김녕서포구∼제주해녀박물관)는 2014년 1만4천명, 2015년 9천명, 2016년 1만명, 2016년 8천700명이 찾았지만, 2017년에는 4천300명이 찾는 데 그쳤다.
작년에도 4천명만이 올레20코스를 찾았다.
사정은 올레 2코스(광치기해변∼온평포구)와 21코스(하도∼종달올레)도 다르지 않다.
한 달에 1천 명이 훌쩍 넘는 탐방객이 찾던 길은 몇 년 새 찾는 발걸음이 절반 이상 줄었다.
인기 있는 7코스(서귀포∼월평올레)의 경우 매년 10만명 이상이 꾸준히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과 몇 년 전 30만명 넘는 사람들이 찾은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제주 각지에 새로 생겨난 걷는 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 걷는 길은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방치상태다.
실제로 2012년 조성된 제주시 오라동 면암 유배길은 쓰레기에 둘러싸인 빛바랜 이정표만 남아있을 뿐, 탐방객은 커녕 탐방 코스조차 찾기 힘들었다. 걷는 길에 대한 안전 문제도 여전히 화두다.
2014년 올레길 살인사건 이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다.
지난 7월에는 서울에서 온 학생 21명과 보호자·인솔 교사 7명 등이 호우 특보가 내려진 한라산 둘레길을 걷다 불어난 계곡물에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길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주체들도 제각각이다.
한국관광공사가 파악한 제주지역 64개 걷는 길을 관리하는 주체는 환경부·산림청 등 중앙정부와 제주도, 행정시, 제주올레 등 다양하다.
이마저도 여러 부서가 각자 맡은 길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에 손을 뗀 경우도 있다.
정부가 도보 여행길에 대한 기본계획을 확립하고 걷는 길 조성과 관리에 나섰지만 수년째 요원한 상태다.
걷는 길이 제대로 조성됐는지 평가할 시스템도, 관리와 운영에 대한 통합 규정도 없다.
제주 올레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걷는 길에 대한 관리체계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dragon.
/연합뉴스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제주에는 2007년 개장한 제주올레를 시작으로 둘레길과 지질 트레일 등 걷는 길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곧게 난 길이 아닌 지형을 따라 자연에 순응하면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은 '빠름'에 지친 현대인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제주올레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길은 10년 넘는 기간 자연훼손과 난개발을 부추기기도 하고 방치되거나 잊히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 여기도 저기도 '길·길·길'
국내 걷기 열풍을 주도한 제주올레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정규코스 21개와 산간과 섬 등을 걸어서 여행하는 5개 부속 코스 등 모두 26개 코스, 425㎞로 이뤄졌다.
올레길은 2007년 9월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2012년 정규 마지막 코스가 확정되는 동안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행정시와 마을자생단체, 종교계 등도 걷기 열풍에 편승해 지역과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걷는 길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걷는 길로는 한라산을 해발 600∼800m 높이로 도는 한라산 둘레길과 사려니숲길, 삼다수 숲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질 경관을 따라 걷는 김녕·월정, 수월봉,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 등이 있다. 종교를 잇는 순례길도 생겨났다.
제주 천주교 역사 120년 발자취를 따라 걷는 천주교 성지 순례길과 기독교 신앙 궤적을 따라 제주의 속살을 둘러보는 제주 기독교 순례길, 제주 전통 사찰과 문화재 사찰, 불교 관련 토속신앙 터 등을 연결하는 불교 성지 순례길은 신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제주에 유배 온 인물들의 유배 생활을 되짚어보는 추사의 길과 면암 유배길, 이중섭·변시지·현중화 등 예술가들의 삶을 되짚는 작가의 산책길, 해녀의 발자취를 담은 숨비소리길, 옛 제주성 둘레 답사길 등 단순한 탐방로에서 진화해 이야기까지 곁들어진 길도 늘어났다. 이외에도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마을이나 학교에서도 지역의 특색을 담은 걷는 길을 여럿 만들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제주에 64개의 걷기 여행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길까지 포함하면 도내 걷는 길은 100개 코스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올레길 탐방객 5년 새 반 토막…걷는 길 '잊히고 방치되고'
걷는 길이 다양하게 많이 생겨나면서 탐방객들의 선택권은 넓어졌다.
그러나 짧은 기간 우후죽순 생겨난 길은 수년이 지나며 자연훼손을 부추기기도 하고, 방치되고, 잊혀지기도 하며 지역의 문제로 떠올랐다.
제주올레는 여행객 증가에 따른 난개발과 답압(밟아서 생긴 압력)으로 인한 훼손 등으로 자연 생태가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올레 10코스인 경우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했다. 인기 있는 걷는 길 주변은 탐방객과 주민간 갈등도 발생했다.
탐방객 중 일부가 쓰레기를 투기해 주민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주차난이 심화하기도 했다.
또 불법 노점상까지 자리 잡으면서 오히려 제주 관광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사례도 있다.
올레길이 최고 전성기를 누린 2013년 제주올레 코스 일부 구간에 운영되고 있는 노점상에 대한 첫 강제철거가 이뤄졌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결국 2013년 119만명이 찾으며 정점을 찍었던 제주올레 탐방객 수는 2014년 118만명, 2015년 94만명, 2016년 68만명, 2017년 64만명, 2018년 58만명 등으로 5년 새 반 토막이 났다.
게다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잊히는 길도 생겼다.
제주올레 20코스(김녕서포구∼제주해녀박물관)는 2014년 1만4천명, 2015년 9천명, 2016년 1만명, 2016년 8천700명이 찾았지만, 2017년에는 4천300명이 찾는 데 그쳤다.
작년에도 4천명만이 올레20코스를 찾았다.
사정은 올레 2코스(광치기해변∼온평포구)와 21코스(하도∼종달올레)도 다르지 않다.
한 달에 1천 명이 훌쩍 넘는 탐방객이 찾던 길은 몇 년 새 찾는 발걸음이 절반 이상 줄었다.
인기 있는 7코스(서귀포∼월평올레)의 경우 매년 10만명 이상이 꾸준히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과 몇 년 전 30만명 넘는 사람들이 찾은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제주 각지에 새로 생겨난 걷는 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 걷는 길은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방치상태다.
실제로 2012년 조성된 제주시 오라동 면암 유배길은 쓰레기에 둘러싸인 빛바랜 이정표만 남아있을 뿐, 탐방객은 커녕 탐방 코스조차 찾기 힘들었다. 걷는 길에 대한 안전 문제도 여전히 화두다.
2014년 올레길 살인사건 이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다.
지난 7월에는 서울에서 온 학생 21명과 보호자·인솔 교사 7명 등이 호우 특보가 내려진 한라산 둘레길을 걷다 불어난 계곡물에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길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주체들도 제각각이다.
한국관광공사가 파악한 제주지역 64개 걷는 길을 관리하는 주체는 환경부·산림청 등 중앙정부와 제주도, 행정시, 제주올레 등 다양하다.
이마저도 여러 부서가 각자 맡은 길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에 손을 뗀 경우도 있다.
정부가 도보 여행길에 대한 기본계획을 확립하고 걷는 길 조성과 관리에 나섰지만 수년째 요원한 상태다.
걷는 길이 제대로 조성됐는지 평가할 시스템도, 관리와 운영에 대한 통합 규정도 없다.
제주 올레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걷는 길에 대한 관리체계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