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의 재등판으로 돌아보는 북한 '저팔계 외교'

김일성 시절부터 활동한 북한 외교 원로
대미 외교, 강석주-김계관-이용호 라인으로 이어져
표리부동하게 ‘실속’ 챙기는 ‘저팔계 외교’ 이끌어
김정은 체제에서도 막후 브레인 역할
미·북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한 외교의 산 증인’으로 꼽히는 김계관 전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27일 담화를 통해 재등판했다. 김일성 시절부터 미국과 핵협상 전면에 나섰던 원로 외교관인 김계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북한 특유의 ‘저팔계 외교’ 전술이 부각되고 있다.

김계관은 김일성 체제 땐 당시 외무상이었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밑에서 일했고, 김정일 체제로 바뀐 후엔 강석주 전 내각 부총리와 함께 대미 저팔계 외교 전략을 펼쳤다. 북핵 6자회담 당시 북한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이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직속 상사이기도 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겐 원로로서 측근에서 자주 외교정책과 관련해 조언한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5월 16일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수도 있다”고 담화를 냈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열흘 만에 회담 전격 취소를 발표하자 자신의 발언이 감정적인 것이었다며 저자세를 취해 재빨리 상황 조절 모드에 들어가기도 했다.
저팔계 외교는 김정일이 1990년대 외교관들에게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외교방식”이라고 지시한 데서 유래됐다. 어리석은 척, 화난 척, 미련한 척, 미친 척 등 어떤 표정을 동원하든 상관없이 핵을 비롯해 북한에게 필요한 이익을 지키고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구소련 붕괴로 인해 북한에게 기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벼랑 끝 전술’도 이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김계관의 상관이었던 강석주는 외무성 제1부부장 시절이던 1994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와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그의 카운터파트는 미 국무부 북핵 특사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였다. 강석주는 2016년 지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외교술은 지금도 북한에서 최고로 떠받들어진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6월 10일 그를 ‘외교전사’라 지칭하며 “강석주 동지는 오랫동안 대외사업 부문에서 우리 당과 공화국의 대외적 권위를 보장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일꾼”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수용과 이용호, 최선희는 전임인 강석주-김계관의 외교철학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하지만 김정은이 미국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 러시아와도 활발히 회담하는 등 김일성, 김정일보다 광폭 행보를 보임에 따라 북한의 외교라인은 과거보다 더욱 유연하고도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이용호와 최선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북제재 완화 희망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최선희가 평양으로 돌아가며 김정은의 뜻을 직접 밝히는 등의 행동은 예전의 북한 외교관들에게선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견고한 외교 라인과 극단적인 현실주의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을 우리 잣대로 예상하지 않는 게 진정한 북한 외교 패턴을 예상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협상시 북한은 매우 구체적인 요구 조건을 제시하는 대신 상대방을 강하게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수시로 표정이 바뀌는 저팔계 외교 앞에선 대화 파트너 역시 철저히 현실적으로 냉정히 북한을 분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30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한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연설자의 급이 낮아 마지막날로 밀려났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연설에서 실무협상과 대북제재에 대해 입장을 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외교는 명분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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