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회계사 공채에 지원자 '0'…"그래도 공기업인데…"

신외부감사법 시행과 관련해 대한회계학회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최근 들어 회계사들의 몸값이 ‘금값’이 되고 있다. 사진=한경DB
강원 원주혁신도시의 한 공기업이 최근 공인회계사(CPA)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한 상태에서, 원주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지원자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죠.

얼마 전에는 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사내 회계사 중 3명이 한꺼번에 퇴사한 겁니다. 해외 거래가 많아 반드시 회계 전문가들이 필요한 곳입니다. 평소 10명 정도 사내 회계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3명밖에 남지 않았다는군요.이 회사는 기존 직원들과 같은 급여 체계를 적용할 경우 회계사들이 이탈할 것 같아 이미 ‘전문계약직’ 형태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연봉을 더 높여주기 위해서죠. 그런데도 잇따라 회사를 떠나거나 신규 채용 응시자가 없는 겁니다.

이 기업이 재무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대주주인 공기업입니다.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이 회사가 ‘회계사 구하기’에 애를 먹고 있는 건, 사실 요즘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회계사 몸값이 ‘금값’이 된 겁니다. 회계법인의 4~5년차 젊은 회계사들 연봉은 수당을 합칠 경우 1억원에 육박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주된 원인은 새로 시행한 외부감사법 및 주기적 감사일 지정제입니다. 올해가 시행 첫 해이죠. 일정한 회계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기업들이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기업마다 회계 전문인력 강화에 나섰고, 회계법인에도 일감이 몰리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도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회계처리 방식이 임원 거취는 물론 기업 흥망을 좌우할 정도라는 게 확인됐으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계사 위상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만년 ‘을(乙)’의 입장인데다 ‘영업’을 뛰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게 주요 배경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관심도 낮아지면서 서울대 출신 합격자 수가 전국 대학 중 간신히 10위권을 유지할 정도였지요.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건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는 기류 때문입니다. 지방 공기업의 회계사 구인난에서 잘 드러나듯, 향후 몇 년간은 ‘회계사 특수’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