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정, 7주만에 시즌 2승…결혼하고 더 빨라진 '우승 시계'

LPGA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
'와이어 투 와이어' 정상

남편의 '그림자 외조' 힘입어
통산 4번째 우승컵 들어올려
첫우승 빼곤 모두 4타차 정상
30일(한국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브릭야드크로싱GC(파72·6456야드). 10번홀(파5)에서 허미정(30)이 버디 퍼트에 성공하자 선글라스와 흰색 모자를 쓴 채 박수를 치는 검정 반팔티 차림의 남성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해 1월 결혼한 두 살 연상 남편 왕덕의 씨다. 앞선 대회에선 우비를 입고 수중 응원전을 펼쳤던 그는 3주 만에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도 등장해 허미정에게 힘을 실어줬다.

허미정이 남편의 그림자 외조 속에 평소 꿈꿔오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 한 시즌 다승과 나흘 내내 선두를 내주지 않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허미정의 새 우승 공식은 4타차?

두 타 차 선두로 시작한 최종 라운드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우승 경쟁을 하던 마리나 알렉스(29·미국)가 파3인 3번홀과 7번홀에서 보기를 범해 두 타를 잃는 사이 허미정은 전반에만 두 타를 줄여 격차를 벌렸다. 4위로 출발한 나나 마센(24·덴마크)이 5타를 줄이며 맹추격했지만 허미정은 후반에도 두 타를 더 줄여 18번홀(파4)에 들어갈 때 격차가 이미 4타가 벌어졌다. 마지막 홀 버디 퍼트를 아깝게 놓쳐 고진영(24)의 ‘5타 차 우승’과 타이 기록을 세우진 못했으나 여유 있게 승부를 매듭지었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 ‘허-왕’ 커플은 경기가 끝난 직후 진한 키스로 우승을 자축했다.

신들린 듯한 쇼트게임과 ‘짠물 퍼팅’이 빛을 발했다. 나흘간 퍼트 수(26-29-24-28)는 모두 30개 이내였다. 한희원 프로(JTBC골프 해설위원)는 “백스윙이 짧아지는 등 갈수록 스윙이 간결해지고 있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도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정교해졌다”고 말했다. 허미정은 힘들이지 않는 스윙으로 270~280야드를 쉽게 보내는 ‘소프트 장타자’다. 이번 대회 3라운드에선 286야드를 치기도 했다.허미정은 이번 우승으로 시즌 2승, 통산 4승을 수확했다. 2009년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 생애 첫승을 따낸 그는 2014년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 지난달 레이디스스코티시오픈 등 5년 주기로 3승을 쌓았다. 네 번째 우승은 불과 7주 만에 수확해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첫 우승을 제외하면 모두 4타 차 우승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우승 상금 30만달러를 확보해 시즌 상금 순위는 28위에서 15위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K골프, 시즌 최다승 기록 경신할까

허미정은 우승이 확정된 후 대회 코스의 4개 홀을 품고 있는 자동차 경기장 트랙에 입을 맞췄다. 마시고 남은 우유를 머리에 붓는 ‘밀크 샤워’도 했다. 2017년 창설된 이 대회 전통이다.허미정은 “대회 초대 챔피언인 렉시 톰프슨과 지난해 우승자 박성현의 세리머니를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 됐다”고 좋아했다.

이번 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브론테 로(24·잉글랜드), 브룩 헨더슨(21·캐나다), 한나 그린(23·호주)에 이어 네 번째다. 다승자로는 고진영(4승), 헨더슨(2승), 박성현(26·2승), 김세영(26·2승), 그린(2승)에 이어 여섯 번째다. 이들을 비롯한 태극낭자들은 올 시즌 LPGA투어 26개 대회에서 13승을 합작했다.

골프계는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고쳐 쓸지 주목하고 있다. 기존 최다승 기록은 2015년과 2017년 세운 15승이다. 올 시즌 남은 6개 대회에서 3승을 추가하면 사상 최초로 16승 고지를 밟을 수 있다. 다음 대회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은 10월 3일 미국 텍사스주 더 콜로니에서 열린다. 허미정의 집이 텍사스주에 있다. 그는 “지금처럼 즐기면서 플레이하면 3승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10월 시댁 부산에서 열리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해 한국 팬들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