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전 반대한 시라크 前 프랑스대통령 뒤늦게 애도

폼페이오 국무장관, 시라크 별세 사흘 뒤에야 애도성명
2003년 당시 시라크와 이라크전 문제로 반목했던 부시 전 대통령은 '침묵'
'역대 최고 대통령 누구?' 설문에 30%가 '시라크'…드골과 동률
2003년 이라크전 개전 당시 프랑스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던 미국이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별세 소식에 뒤늦은 애도를 표했다. 30일(현지시간) 르 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시라크 전 대통령이 타계한 지 나흘째인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공직에 인생을 바친 시라크 전 대통령은 우리 미국이 프랑스와 공유하는 가치와 이상을 지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셨다"면서 애도했다.

애도 성명에서는 시라크가 2003년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에 반대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었다는 점을 미국은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과 프랑스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 증진을 위해 항상 협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9·11 테러가 일어나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감추고 있다면서 전쟁을 개시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에서 시라크의 별세에 처음으로 조의를 표한 인사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시라크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직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고 르 피가로는 전했다. 반면에 부시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는 "시라크는 담대하고 유능한 정치가였다"면서 애도를 표하는 등 세계 각국의 전·현직 국가수반들은 시라크의 별세 소식에 곧바로 애도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프랑스 우파 현대정치의 거물로 꼽히는 시라크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두 차례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다.

재임 시 유로화를 도입했고,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국제사회에서 주도했다. 시라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 당시 "전쟁은 언제나 마지막 수단이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며, 최악의 해법이다.

전쟁은 죽음과 비참함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미국은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현재의 프랑스 국민도 시라크를 '이라크전에 반대한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다.

29일 발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와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가 프랑스 유권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1%가 이라크전 반대를 시라크 12년의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0%가 시라크를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샤를 드골과 동률을 이뤘다.

드골은 2차대전 때 나치에 대항해 싸운 뒤 전후(戰後) 프랑스를 재건한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프랑스에서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역대 최고의 대통령을 묻는 조사에서는 드골, 시라크에 이어 좌파의 거두였던 프랑수아 미테랑(17%),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각각 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정계 은퇴 후 퇴행성 신경계 질환을 앓던 시라크는 지난 26일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장례는 이날 파리 시내 생 쉴피스 성당에서 국장(國葬)으로 진행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