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섭 영모도부터 김환기 서예까지…정동1928아트센터 개관전
입력
수정
정동 구세군회관, 복합문화공간 탈바꿈…갤러리 '필의산수, 근대를 만나다'展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광화문 뒤편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으면 적벽돌 건물이 나온다. 당당한 현관 기둥 4개가 인상적인 건물은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건립된 구세군중앙회관(서울시 기념물 제20호)이다. 구러시아공사관, 영국대사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덕수궁 등 주변 건물과 함께 정동의 근대 풍경을 구성한다.
구세군중앙회관은 개보수를 거쳐 복합문화공간인 정동1928아트센터로 최근 탈바꿈했다. 중앙회관 왼편에 70여년 전 지은 별관은 미술 갤러리로 기능한다. 한때 구세군한국군국 사령관 사택, 사관 교육생 기숙사 등으로 쓴 공간이다. 2개 층을 합쳐 80평 규모다.
2일 찾은 갤러리는 지붕을 받치는 옹골진 목조 트러스가 인상적이었다. 흰 벽면 아래쪽은 살짝 절개해 원래 적벽돌을 그대로 드러냈다. 유리창은 덕수궁길 한적한 정서와 광화문 도심 풍경을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12월 4일까지 열리는 갤러리 개관전 '필의산수(筆薏山水), 근대를 만나다'는 겸재 정선부터 문학진(95)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을 '문인화' 맥락에서 돌아보는 자리다. 필의산수는 붓을 잡은 이의 생각과 개성을 담은 산수를 뜻한다. 이승현 정동1928아트센터 예술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식인의 나라였던 조선 회화에 담긴 가치와 의미는 재고돼야 한다"면서 "조선시대 작품뿐 아니라 김환기, 장욱진, 이대원 등 문인화 맥을 이은 여러 근대 작품을 망라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석창 홍세섭(1832∼1884)이 그린 영모도(翎毛圖)다. 백로와 가마우지 등을 그린 10폭 병풍은 훗날 안타깝게도 14개 조각으로 쪼개졌다. 한 소장가가 이들을 따로따로 사들였다가, 개화기에 촬영된 흑백 사진 한 장 덕분에 원래 하나의 병풍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퍼시벌 로웰이 찍은 사진에서는 조선 말기 문신 홍순목 뒤에 10폭 병풍이 놓여 있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제발(題跋)이 쓰인 문인화 4점도 처음으로 한꺼번에 대중에 선보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매화, 난초, 국화와 대나무 대신 산수를 각각 담은 그림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는 산수와 국화, 난초 3점만 등장했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김환기(1913∼1974)가 김삿갓 시를 흘려 쓴 서예 작품도 눈길을 끈다. 김종하가 도불 전인 1955년 그린 수표교 그림 등 평소 대중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던 작가 작품도 여럿 포함됐다.
강세황과 조선회화의 문인화적 성격(변영섭 전 문화재청장), 19세기 후반 아속공상을 추구한 문인화가들(최경현 문화재청 감정위원), 근대한국화 문인화적 요소(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필의산수 근대를 만나다(이승현)를 주제로 학술강연도 열린다. aira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