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번엔 EU와 '관세 전쟁'

항공기 등에 징벌적 관세
EU도 맞대응 강력 시사

유럽연합(EU)이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부당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EU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EU 무역전쟁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에 부담이 커지게 됐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오는 18일부터 EU 항공기에 10%, 일부 농산물과 공산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5% 관세가 적용되는 제품은 위스키, 커피, 치즈, 올리브오일, 냉동육, 기계류 등이다.

USTR의 이번 관세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15년간 지속된 ‘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것이다. WTO는 이날 “EU의 부당 보조금으로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정하면서 미국이 연간 75억달러어치의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미국의 이번 관세 부과 규모는 WTO가 승인한 75억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은 “WTO는 최고 100% 관세 부과를 허용했지만 EU와 15년간 지속된 이 논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 정도 선에서 관세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살펴보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대응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美, EU에 '징벌적 관세'…항공기·공산품·농산물 최대 25% 부과

세계 경제에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미국이 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항공기와 농산물·공산품에 오는 18일부터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서양 동맹’으로 불리는 미·EU로까지 무역전쟁이 확산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11월에 ‘수입차 최고 25%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이때도 핵심 타깃은 유럽차가 될 전망이다.

미·중 이어 미·EU 무역전쟁 확산

미국의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미·EU 간 ‘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준 결과다. WTO는 이날 EU가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180억달러의 부당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판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연간 75억달러어치의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걸 승인했다.

미국은 부당한 에어버스 보조금 때문에 보잉 등 미국 항공기 제작사와 부품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며 2004년 WTO에 EU를 제소했고 15년 만에 승소했다. 미국이 EU 항공기에 10%, 일부 농산물과 공산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WTO의 결정을 “미국을 위한 큰 승리”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모든 나라가 오랫동안 미국을 뜯어먹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EU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즉각 “대응 영역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맞대응하겠다는 취지다. EU는 그동안 미국이 에어버스 보조금을 빌미로 EU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보복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미국이 에어버스 보조금을 문제 삼은 것처럼 EU도 보잉에 대한 미국 측 보조금을 물고늘어지며 WTO에서 공방을 벌이고 있다. AP통신은 “WTO는 보잉에 불리한 별도의 결정을 통해 EU가 (미국산 제품에) 얼마나 많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지에 관한 판정을 내년에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내년에 ‘보잉 보조금’에 대한 WTO 판정이 나오면 EU도 미국 제품에 징벌적 관세를 물릴 수 있어 미·EU 무역전쟁이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차에까지 관세 부과하면 일파만파

미·EU가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WTO는 최고 100% 관세 부과를 허용했지만 EU와 15년간 지속된 이 논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관세율을 이 정도 선에서 (낮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EU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EU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관세 부과 대상을 WTO가 상한선으로 정한 ‘연간 75억달러어치’보다 낮게 잡았다는 의미다.

미 CNBC는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이 WTO가 승인한 75억달러어치에 훨씬 못 미친다”며 “미국과 EU 측 관계자가 오는 15일 무역협상을 위해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EU가 항공기 보조금 문제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면 세계경제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은 물론 우방인 EU까지도 압박하고 있어 결과를 속단하긴 어렵다.

특히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 결정은 태풍의 핵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2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차와 수입차 부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라고 판정했다. 백악관은 이에 따라 수입차 등에 최고 25% 관세 부과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핵심 타깃으론 유럽차가 꼽힌다. 한국은 지난해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일본은 지난달 미·일 1단계 무역협정 서명을 통해 미국에 상당한 양보를 했지만 미·EU 간에는 그런 협정이 없다. EU는 미국이 유럽차에 고율관세를 매기면 즉각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과 EU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4월 자국 철강·알루미늄산업 보호를 위해 유럽 등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관세를 부과한 게 시작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EU는 리바이스 청바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등 미국 특산물에 맞불 관세를 매겼다. 이후 미국과 EU는 지난해 7월 ‘휴전’을 선언하고 협상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협상 진척은 더디다.

AP통신은 “미·중 무역 마찰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뤄진 이번 (미국의 EU 제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조치가 세계 경제를 짓누를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를 키우는 무역 전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