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 발등 찍는 마타도어

허원순 논설위원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소 입장에서 보면 투우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된다. 제일 먼저 ‘피카도르’가 등장해 소의 목에 창을 찔러대며 힘을 뺀다. 그 다음 ‘반데릴레로’가 나와 어깨에 작은 창 여러 개를 꽂고 빠진다. 소의 체력이 떨어지고 공포심이 극에 달할 때 마지막 투우사 ‘마타도어(matador)’가 나타난다. 붉은 천과 화려한 동작으로 지친 소를 더 현혹시키다 결정적 순간에 천 아래 가렸던 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게 마타도어다.

이 마타도어가 ‘흑색선전’ ‘중상모략’ 의미로 쓰이는 게 의미심장하다. 투우 처지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말 탄 투우사, 드러내놓고 창 든 투우사와 전력을 다해 차례대로 싸워왔는데 정작 심장은 붉은 천을 흔들어대는 마타도어의 숨겨진 검에 빼앗기고 만다.

현대 산업사회에 마타도어가 없는 곳이 별로 없다. 정도의 문제일 뿐, 이 또한 인간사회의 한계다. 정치권을 비롯해 문화예술계, 스포츠계까지…. 경제·산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산업 쪽에서는 주류업계가 그런 악습이 좀 더 있는 곳으로 꼽혀왔다. 빤한 시장을 놓고 마케팅 경쟁을 과하게 벌이면서 빚어진 현상일지 모른다. 신제품 내놓기나 품질 경쟁은 멀고 마타도어 판촉전은 당장 쉬우니 상도덕을 따질 여유도 없을 것이다.

국산 소주 ‘처음처럼’을 판매하는 롯데주류가 ‘일본 술’이라는 마타도어에 시달리다 법적 대응에 나선다고 한다. 대형 로펌까지 정해 대응하는 걸 보면 회사 측의 딱한 사정에 동정이 간다. 흑색비방 자체가 문제지만, 반일 정서에 편승한 ‘중상(中傷)마케팅’이어서 더 씁쓸하다.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업계의 노력은 이래서도 중요하다.

마타도어로 치면 정치권을 빼놓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악평·악담 정도는 양반이다. 공당이란 데서 아예 가짜뉴스를 만들어낼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를 가치와 철학을 선거철 표와 교환하고, 정책을 세일즈하며 고객잡기에 나서는 사업 개념으로 보면 본질도 속성도 주류업계와 다를 게 없다. 그래도 차이라면 한쪽은 말끝마다 정의요 공정이고, 시종 소비자·고객(유권자)을 위한다고 우기는 것이랄까. 마타도어로 당장은 조금 재미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상과 모략,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근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제 발등 찍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곳곳에 널려 있는 정치꾼, 정치공학자들이 이 사실을 잘 알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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