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평택으로 떠나자 무너지는 이태원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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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률 26%…서울 1위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4번출구 바로 앞 3층짜리 건물은 통째로 1년 가까이 비어 있다. 해밀톤호텔 맞은편 알짜 입지임에도 공실이 장기화되고 있다. 인근 J공인 관계자는 “아웃백(3층), 커피숍(2층), 데상트 매장(1층)이 3년 전부터 차례로 철수했다”고 말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직격탄
외국인 관광객 감소도 원인
이태원 상권이 급속히 식고 있다. 미군이 용산을 떠나고 외국인 관광객마저 줄어든 영향이다. 그나마 주점, 클럽 등 내국인 위주의 ‘밤상권’이 버텨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고 인근 중개업소들은 우려했다.공실률 1위
이태원 거리의 중심부인 해밀톤호텔 앞 삼거리에선 공실이 쉽게 눈에 띈다. 삼거리에서 녹사평역 방향 코너 자리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은 디저트 가게가 떠난 뒤 3개월째 비어 있다. 건물주가 월 임대료를 23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낮췄지만 임차인이 나서지 않고 있다. 2번출구 앞 코너의 건물 지하는 5년째 공실이다.
4번출구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3층짜리 건물 2~3층은 고깃집이 들어서 있지만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건물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고깃집이 2017년 2~3층을 8년 계약하고 들어왔지만 2개월 전에 장사를 접었다”며 “장사를 하는 것보다 그냥 월세를 내는 편이 손해가 적기 때문”이라고 전했다.폐업이 이어지고 있어 공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태원역 인근에서 30년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외환위기, 메르스 사태 때보다 이태원에 사람이 없다”며 “종업원들도 다 그만두게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내년 초 계약이 만기인데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이태원 거리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26.5%를 기록했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하는 서울 내 상권 중 1위다. 본지가 전수 조사를 한 결과 이태원소방서부터 녹사평역까지 약 610m의 대로변(이태원로)에 접한 건물(61개) 중 1층에 공실이 발생한 곳은 18곳이나 됐다. 약 30%에 달한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이 상권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설명했다. 용산기지 이전은 2017년 7월 미8군사령부부터 시작해 2018년 6월 주한미군사령부까지 떠나며 사실상 완료됐다. 공실률은 미군기지가 떠나기 직전인 2017년 2분기만 해도 14.9%였다. 같은 해 3분기 19.1%로 오르더니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중,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는 것도 상권 침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태원에서 23년간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는 “과거에는 외국인, 내국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외국인은 빠지고 내국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밤상권’도 안심 못해이태원 상권이 그나마 현재의 공실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주점, 클럽 등 소위 ‘밤상권’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주점이 밀집한 해밀톤호텔 뒷골목(이태원로 27 가길)에서 1층이 공실인 상가는 10% 정도다. 전수 조사한 결과 총 29개 건물 중 3개만 1층이 비어 있었다. 공실이 많은 대로변과 달리 골목상권은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태원동의 K공인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인 덕에 유흥상권이 흥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내국인 덕에 상권이 유지되고 있다”며 “외국인의 빈자리를 내국인이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고유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어 밤상권도 안심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태원에서 10년째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이태원에서 밤문화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오면서 이태원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며 “외국인이 빠지면서 천편일률적인 술집과 음식점이 주로 생기고 있어 이태원의 기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군과 중국인, 일본인이 빠진 자리를 그나마 동남아시아, 중동 사람들이 채우고 있는데 이태원의 특색있는 문화가 사라지면 그들마저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태원 주민과 상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놀거리, 볼거리를 만들고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