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의 장점 나열하기

박정림 < KB증권 사장 jrpark@kbfg.com >
글을 쓰는 오늘은 하늘이 무척 맑다. 공기도 상쾌하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날이다. 아름다운 날씨에 힘입어 오늘은 우리 민족의 그 많은 탁월한 장점 중 몇 개만 추려봐야겠다. 나의 경험상 스스로 위축되고 힘들 때일수록 자신감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객관적 시각으로 숨겨진 장점들을 꼼꼼히 찾아내는 것이었기에.

첫째, 에너지가 매우 많다. 열정적이고 역동적이다. 기운 없는 아들에게 “무슨 남자가 피죽도 못 먹은 듯하냐”고 호통치는 것처럼 에너지 없이는 버티기가 힘들다. 대한민국이 경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동체적 에너지 덕분이었다. 냉정하지 못하고 다혈질적인 성향 혹은 빨리빨리 문화가 여러 부실을 만들고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정이 없고 속도가 느리고도 성공한 경우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둘째, 부지런하다. 새벽부터 많은 조찬강의를 꽉 메우는 사람들, 새벽부터 조기축구회나 산악회 등에 참석해 건강과 친목을 도모하는 사람들, 새벽부터 밥을 짓고 졸린 눈을 비비는 자녀를 책상에 앉히는 사람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기업의 대표이사(CEO)로 살면서 오전 5시 이후에 잠자리에서 기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나라다.

셋째, 블렌딩의 귀재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의 블렌딩 문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다른 품종의 포도를 섞어 맛과 향을 조합하는 와인이 있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도 있고 술과 음료를 다양하게 섞는 칵테일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완제품을 별다른 도구 없이 손쉽게 조제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폭탄주는 블렌딩 기술의 압권이다. 편의점의 인기 메뉴인 비빔밥이나 양자택일의 고민을 덜어주는 짬짜면과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역시 우리만의 탁월한 브렌딩 능력의 산물이다.

넷째, 흥이 참으로 많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단체여행 고속버스는 달리는 노래방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끓어오르는 흥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것이다. 노래방이 생기기 전에는 저녁 식당이 모임의 1차 장소이자 2차 장소였다. 숟가락을 수줍게 들고 가사를 외워 노래를 부르던 장면들, 흥과 한을 잘 어울리게 하는 동력 덕분에 한류문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소한 것들만 이야기했을 뿐 우리 민족의 장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외 어려운 상황으로 시련이 많은 때이지만 가슴을 쫙 펴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민족의 장점들을 꼼꼼히 끌어내고자 하는 모두의 노력을 모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