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과거·현재·미래 공존하는 '대서울'을 탐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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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1
갈등 도시서울 중림동엔 ‘대진다다미제작소’란 곳이 있다. 광희동에도 ‘대원다다미’ 간판을 내건 점포가 있다. 생뚱맞거나 우연한 존재가 아니다. 다다미 가게는 두 지역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 거주지로 형성됐음을 알려주는 흔적이다. 옛 역삼세무서 사거리 초입엔 ‘영동 슈퍼’가 자리잡고 있다. ‘영동’은 ‘영등포의 동쪽’을 가리키던 서울 강남의 옛 지명이다. 영동 지구는 1970년대 개발되기 시작했다. ‘영동’이란 이름으로 작은 가게가 그 일대에 자리잡은 시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간판뿐 아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는 머릿돌과 비석, 벽보와 버스 정류장 이름도 그 도시의 정보를 담고 있다.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512쪽 / 2만원
<갈등 도시>를 쓴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서울 곳곳을 걸으며 도시가 살아온 숨결을 짚어낸다. 이런 자신의 작업에 ‘도시 문헌학’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는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답사 대상이 된다”며 “매달, 매년 빠르게 변해가는 서울 안에서도 구석구석 ‘도시의 화석’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갈등 도시>는 지난해 저자가 출간한 <서울 선언>의 2편 격이다. 전작에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식민지 시대 경성 그리고 현재 서울의 경계가 조성된 과정을 살펴봤다면 이번 책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물과 도시의 공간을 더듬어간다. 20개의 답사 코스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북쪽 파주부터 남쪽 시흥까지 서부를 훑는 ‘경인 메갈로폴리스’와 종로구와 중구, 용산구를 들여다보는 ‘대서울의 한가운데’, 의정부부터 용인까지 서울 동쪽을 아우르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다. 행정구역상 서울뿐 아니라 부평과 부천,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의 수가 많은 신도시까지 다뤄 ‘대서울’이란 단어를 썼다.
무엇보다 건물 외부에 있으면서 ‘도시 문헌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머릿돌 역할이 흥미롭다. 저자는 머릿돌에서 건축물대장으로는 알 수 없는 건물주의 성격 및 건물이 있는 지역의 역사와 특성까지 읽어낸다. 인천 부평에 있는 한 교회의 머릿돌은 다른 건물 머릿돌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글자체가 단정하다. 저자는 여기서 권위 의식과 보수적인 성향을 짐작한다. 신림동과 봉천동 주변에 1970~1980년대에 지어 올린 건물들의 머릿돌을 통해서는 서울대 이전부터 남부순환로 개통, 지하철 2호선 개통, 봉천천 복개 등 거리의 모습과 성격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추적한다.
책 전반엔 시간을 품은 채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난다. 저자는 이를 ‘미처 보지 못한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에 대한 필사적인 안타까움’이라고 표현한다. 을지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기와 후기, 21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뒤섞여 있는 공간이다. 그 자체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증언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저자는 “여러 겹으로 쌓인 이 시간의 층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해서 부수려고만 하지 말고 이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모습이야말로 ‘대서울’다운 모습이라 여기며 감상하자”고 제안한다.
책의 목차를 보고 평소 관심 있는 지역이나 자신의 거주지부터 먼저 읽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경계를 맞댄 주변 도시들 간 갈등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이란 부제가 와닿는 대목도 있다. 그럼에도 <갈등 도시>라는 제목은 다소 자극적이어서 오해받기 쉬워 보인다. 사실 책은 건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빌딩이나 역사책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길 위의 흔적들로 이야기를 풀어 가기에 함께 골목을 산책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풍성한 사진들도 그런 느낌을 더한다. 걷고 싶은 서울은 넓고 깨끗하기만 한 도로가 아니라 볼거리가 풍성하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