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의 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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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6
김학용 < 자유한국당 의원 ansung1365@hanmail.net >‘뱃속은 못 속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아닌 척해도 ‘꼬르륵’ 하는 소리 때문에 감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반드시 탄로가 나니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라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나 지금도 나는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곤 한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경제적인 여건을 떠나 늘 당당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다.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음식 값을 먼저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과자를 사먹고 싶어 50원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100원을 주시며 네가 먹고 싶으면 친구들도 먹고 싶은 법이니 꼭 두 개 사서 같이 먹으라 하셨다.세상에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 없겠지만 아버지는 내가 반듯하고 바른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히 키운다는 말처럼 어릴 적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야단도 많이 맞았다.
요즘 일부 부모들은 스펙 쌓아주기와 이른바 ‘아빠 카드’ 밀어주기에 급급할 뿐 자식의 인성교육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아버지 덕분에 동네에서 손꼽히는 말썽쟁이에서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정치인으로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교훈이 큰 힘이 됐다.
아버지는 말년에 투병하시면서 몇 가지 당부를 하셨다. ‘제사 음식은 최고로 차려라’ ‘나 죽거든 울지 마라’는 말씀이다. 제사 음식은 당신이 드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너희들이 먹을 것이니 푸짐하게 차려 자식들과 맛있게 먹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 죽거든 울지 마라’ 하시며 ‘울 힘이 있으면 나중에 산소 한 번이라도 더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은 가까이 있는 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면 어렵고 힘든 일들도 신기하게 잘 풀린다. 하늘나라에서도 못난 자식 잘되기를 응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나의 아버지. 국회의원이 돼 이제 좀 효도를 할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말처럼 정작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비록 하늘에 계시지만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삶의 지혜와 교훈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앞으로도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