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환매할 수 있다더니…" 라임 투자자, 급전 필요해도 돈 못뺀다
입력
수정
지면A4
투자자 수천명 '분통'“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고 큰 위험이 없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다.”
개인 투자자 3000명 넘을 듯
일선 은행PB "상품구조 이상해
고객들에 투자권유 안했다"
올해 초 한 시중은행에서 라임자산운용의 한 사모펀드에 5억원을 투자한 김모씨(68·여)는 10일 라임운용 측의 환매 중단 조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정기예금에만 돈을 넣었을 만큼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왔는데 수익률 몇 퍼센트 더 준다는 은행원 권유에 그만 혹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권형 펀드여서 원금 손실 위험이 낮고 라임운용이 시황이 안 좋을 때도 손실을 낸 적이 없는 실력 있는 운용사라는 설명에 별다른 의심 없이 가입했는데 이 지경이 됐다”고 털어놨다.① 부실 CB 알고도 펀드 팔았나
라임운용이 62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를 중단한 첫날인 10일, 펀드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의 일선 영업점 창구에는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우리은행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등 금융회사 30여 곳을 통해 라임 펀드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만 3000~4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개인투자자는 대부분 채권형 펀드여서 손실 위험이 높지 않다는 사전 설명을 듣고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는 “일선 PB들 중에는 실제 상품 구조를 살펴본 뒤 이상하다고 생각해 투자 권유를 하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선 라임 펀드가 부실 상장사 전환사채(CB) 등에 투자해 위험하다는 얘기가 이미 올초부터 나돈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펀드 판매 실적이 없는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판매 요청이 들어왔지만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 관리) 부서에서 판매 불가 결정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② 개방형 펀드임에도 환매 원천 불가
이번에 환매가 중단된 ‘라임 플루토 FI D-1호’(약 9000억원)와 ‘테티스 2호’(약 2000억원) 펀드는 각각 사모사채와 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상품) 자산을 담고 있다. 이들 자산은 장내 시장에서 현금화하기가 쉽지 않아 언제든지 환매 가능한 개방형 펀드로선 적절하지 않다. 라임은 그걸 알면서도 중도 환매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개방형 펀드로 운용했다. 하지만 펀드 부실 운용 의혹이 불거진 지난 7월 이후 고객 환매 요청이 쏟아지면서 문제가 커졌다. 라임운용 측은 “이대로라면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헐값으로 매각해 투자자 손실만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③ 언제까지 돈 묶이나환매 중단에 따라 투자자들 관심은 돈이 언제까지 묶일 것이냐다. 이에 대해 라임운용 측은 펀드가 담고 있는 CB·BW의 경우 주가만 상승하면 가치가 정상으로 회복되는 만큼 환매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만기까지 기다리거나 조기 상환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코스닥 기업 특성상 원리금 회수가 쉽지 않아 환매 중단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최장 2~3년간 투자금이 고스란히 묶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④ 피해본 투자자 소송 가능성은
사모펀드는 환매 중단을 고객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투자자가 구제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다. 개별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지만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 결정 때부터 손실 책임을 염두에 둔 만큼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그럼에도 이번 환매 중단 결정 과정에서 투자자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던 점은 논란거리다. 라임운용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에 이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례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환매 중단이 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 같은 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PB는 “사모펀드는 가입자 수가 펀드당 49명 이하로 제한돼 있어 수익자 총회를 여는 것 자체가 공모펀드에 비해 쉽다”며 “이번 사태의 피해자만 수천 명에 달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운용사 측이 일방적으로 환매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호기/정소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