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공연, 사우디 변화의 강력한 카드…"경기장 첫 관람 행운"

"개방정책 속 대형 K팝공연유치, 획기적"…각종 규제도 풀어
중동서 K팝 팬·한국어 배우는 젊은층 확산…"한류, 이제 본격 시작"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에요.그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원했던 일이죠. K팝 팬 대부분이 여성이기에 행운이고 행복합니다.

"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사는 미즈나(26) 씨는 11일(이하 현지시간)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릴 방탄소년단 공연을 직접 본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했다.

지난 10일 이곳에 마련된 방탄소년단 공식 굿즈(팬 상품) 판매 부스를 찾은 그는 "아직 해외에 가본 적이 없어 방탄소년단 공연은 처음"이라며 설레했다.미즈나 씨와 함께 만난 하노프(21), 조하라(23), 아스마한(17), 기아(25) 씨도 "방탄소년단 공연은 물론 축구 경기장 관람도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은 주로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사우디는 그간 순차적으로 여성의 경기장 금지조치를 해제했다.2017년 9월 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축제에 처음으로 여성 입장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해 1월에는 여성의 축구 경기장 관람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이번 공연은 대중문화에 제약이 많던 사우디 사회에 부는 개방·개혁 드라이브 속에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아바야를 입은 여성 관객 3만명이 이들 공연에 환호할 현장은 사우디 변화를 대외적으로 보여줄 강력한 카드가 될 전망이다.
◇ 사우디 개방 정책 속 "대형 K팝 공연 유치 획기적"

사우디에서 34년간 거주한 김효석 리야드 한인회장은 "2년 사이 사우디가 크게 변화했다"며 "방탄소년단 공연이 열리는 것도 사우디 정부가 관광 비자를 대거 발급하는 것도 획기적인 일"이라고 짚었다.

역시 이곳에서 10년간 산 이미란 한진 E&T 사우디 법인장도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음악을 틀 수 있게 됐고, 2년 전부터는 남녀가 음식점 한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다.

또 여성 복장 등을 단속하던 종교 경찰이 무력화하면서 자국 여성들 복장도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만난 일부 여성 팬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컬러풀한 의상에 아바야를 겉옷처럼 걸쳐 비교적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그중 한 명인 마하(17) 양은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ove)에 맞춰 현장에서 춤 실력을 선보였다.

"평소 히잡을 쓰지 않는지" 묻자 유쾌하게 지인의 니캅을 쓰고서 한국식 손가락 하트를 그려 보였다.
이같은 변화 흐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경제·사회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이 추진되면서다.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다양한 분야로 분산·발전시키고, 여성의 권리 증진과 사회 참여 확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관광 진흥까지 겨냥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 계획을 세우면서 해외 유명 가수 공연도 잇달아 유치했다.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방탄소년단 공연 직전에는 49개국 대상으로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했고, 외국인 여성의 복장 규정을 완화하고, 가족 증명 없이도 외국인 남녀 관광객 혼숙도 허용했다.

자국 여성 권리 보장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지난해 6월에는 여성 운전을 허용했는가 하면, 그해 8월에는 성인 여성이 남성 보호자 동의 없이 여권을 신청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로 인해 가장 보수적인 중동 국가로 인식된 사우디의 방탄소년단 공연 유치는 인근 지역 K팝 팬들에게도 놀라움을 안겼다.

이란 테헤란의 세종학당 교사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김남연 통신원은 "이란보다 사우디가 먼저 여성의 경기장 입장을 허용하고 그곳에서 방탄소년단 공연을 한다니, 이란 아미(팬클럽)들이 무척 놀라워했다"며 "이란이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롭다는 자부심 때문에 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 10일 여성 전용 구역을 마련해 38년 만에 축구 경기장에 여성을 입장시켰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세희 두바이 통신원도 "중동에서 방탄소년단이 이 정도 규모 공연을 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고 획기적인 일"이라며 "왕세자가 두바이처럼 관광지화하려고 노력해 이런 세계적인 공연을 유치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두바이의 K팝 공연 프로모터(세희컴퍼니 대표)인 이 통신원은 지난 7월 사우디 제다 페스티벌 일환으로 이틀간 총 1만석 규모의 슈퍼주니어 공연을 진행했다.

그는 "사우디가 문화적인 영역에서 본격 개방한 게 1년여밖에 안된다"며 "무대에서 춤추거나, 현지 여성이 춤추는 것도 상상이 안 됐다.

슈퍼주니어 공연 때도 남녀가 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것이 허용됐는데, 2~3개월 전보다 더 변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중동 한류, 이제 시작…위기 요인도 상존

변화에 시동을 건 중동 지역은 그간 K팝 스타들의 활동 반경이 아니었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성과 정치적인 불안정성, 종교적인 율법에 따른 문화 차이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주몽'과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어 잠재된 한류 시장으로 간주됐다.

다수 전문가는 가족 문화나 예의와 정을 중요시하는 정서적 공감대, 외부 활동 제약으로 인터넷 활동이 많은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콘텐츠 노출 빈도가 높은 점 등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특히 K팝 스타들이 미국, 유럽, 남미 등지로 시장을 넓히는 사이, 이곳 젊은층에선 K팝 팬이 크게 확장했고 한국어를 배우는 층도 확연히 늘었다.

김남연 통신원은 "이란에선 SNS를 막아놔도 우회적으로 사이트를 열어 활용한다"며 "주로 텔레그램을 통해 팬클럽을 모집하고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가사를 번역해 올리며 교류한다.

방탄소년단, 슈퍼주니어, 갓세븐 등 많은 팬클럽이 활동한다"고 말했다.

또 "2013년 생긴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무척 많다"며 "테헤란대학에서도 한국어가 교양 수업으로 마련됐고, 외국어학원에서도 한국어 강좌가 인기다.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무료로 사이트를 열어 가르치기도 한다.

앞으로 (한류 바람은) 점차 확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희 통신원도 "K팝과 드라마는 중동 로컬인과 동남아시아계 이주민 등 아바야를 입는 현지인들에게 메이저 문화"라며 "드라마를 남녀노소 좋아한다면 K팝은 10~20대 젊은층 문화"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중동 한류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 통신원은 "지금껏 중동은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고 돈이 되는 시장이 아니라 여겨졌다"며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구와 자본이 있는 사우디가 열린 것은 큰 의미다.

K팝 공연 문의도 계속 오고, 여러 의미에서 중동 한류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만, 여전히 정치·경제적인 불안정성, 여권 탄압 논란 같은 위기 요인은 상존한다.또 인샬라(신의 뜻대로) 문화가 만연해 "믿고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연합뉴스